112년 만에 돌아왔다. 

 자기 의지로 떠난 것이 아니라 강제로 뜯기고 분해되고 헤쳐져 현해탄 건너 어느 돈 많은 일본 놈의 앞마당인지 뒷마당인지 정원에 놓여있다가 조선총독부의 불호령에 다시 뜯고 헤치고 분해해서 현해탄 건너 조선총독부 뒷마당 어느 잔디밭에 놓고는 각종 총독부 파티 때 보기 좋은 장식품으로 이용됐다. 1950년 6·25 동란 때는 미군의 폭격으로 1만여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것을 어느 귀인께서 홀연히 나타나 시멘트를 바르고 철사로 이어서 조각조각을 겨우겨우 붙이고 붙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시멘트가 별수 있나, 철사가 별수 있나, 빗물에 깎이고 녹물이 흘러 국보의 체면이 말이 아니고 바람에 넘어질까 불안하기 그지없던 차에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놔라"라는 주민들 요구에 호응하여 또다시,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로 뜯어내고 분해하고 헤쳐내어 파이고 헤진 곳을 메꾸고 이어 붙여 그나마 본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됐다. 

 그렇게 2023년 8월 1일 13시경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개울을 건너 법천사지 유물전시관으로 옮겨왔다. 법천리 개울을 건너간 지 112년 만에 다시 그 개울을 건너왔건만, 원래 있던 지광국사탑비 맞은편 제 자리로 가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할 국보 101호 지광국사탑의 기구한 운명이여. 

 기구한 운명으로 강탈당한 것은 탑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정신도 함께 강탈당하였다. 탑이 능욕당할 때 우리의 정신도 능욕당하였고 탑이 부서질 때 우리의 정신도 산산이 부서진 것이었다. 

 지광국사탑이 강제로 뜯겨 나갔는지 112년간의 기구한 세월은 우리에게 정신이 나간 세월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시대, 미군정 시대, 남북분단의 전쟁시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난은 쌓이고 쌓여 급기야 독립군 때려잡던 이가 고관대작으로 사회의 지도자로 모셔지는 이 어이없는 사회. 

▲ 지난 1일 무진동 차량에 실어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지광국사탑 부재를 이송했다.

 기어이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멀쩡한 사람이 범죄자로 몰리고 길 가던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잘나가던 고속도로가 엉뚱한 곳으로 휘어지고 아파트가 무너지고 국민 대다수가 최저 생계비로 연명해야 하는 사회, 탐욕과 분노가 넘치는 비상식, 비정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사회를 정신 나간 사회가 아니고 무어라 하겠는가?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아픔, 누군가의 눈물로 일궈낸 부귀영화가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이런 정신 나간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은 내 안에 지키고 있어야 할 무언가, 우리 사회의 중심 가치로 있어야 할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때이다. 엉뚱한 곳에 있던 탑도 영 어설펐고 홀로 서 있는 탑비도 어정쩡하기만 했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시대도 그래왔다. 112년 만에 탑과 탑비가 본래의 제 모습으로 있어 아름다워지듯이 우리들의 정신, 우리들의 가치, 서로를 살리고 배려하고 모시는 마음을 본래의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할 때 아닌가?

 지광국사탑은 과거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뛰어난 돌 조각 품에 그치지 않는다. 그건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이다. 오늘은 과거를 전제로 하고 내일은 오늘을 근거로 한다. 잃어버렸던 과거, 정신 나간 과거였지만 오늘에서야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니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니 이제, 제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나.

이광원 부론면민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