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극장을 지키겠다는 시민 몇몇을 몰아내자고 전시상태도 아닌데 공무원들에게 민방위복까지 입혀 동원했다고 한다. 원강수 시정이 시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생각이 다른 시민은 타도의 대상이란 말인가.

 민방위복 사건으로 드러난 원칙 없는 행정과 일방통행은 진작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선거에서 공을 세웠다는 분들의 선을 넘은 행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부적절한 인사도 언론에 오르내렸고, 자칭 시장입네 하는 분들이 여럿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최근 지인의 상가(喪家)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공무원들은 이들의 부당한 업무개입과 도를 넘은 노골적인 요구로 압박감이 크다고 하소연하였다. 납득할 수 없는 잦은 인사이동으로 공직자들의 사기도 저하되고 있다고 하였다. 사실이라면 엄중히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시민의 불이익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후한 말 나이 어린 영제를 조종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몰락의 길로 이끈 환관 무리들을 일컬어 십상시라고 하였다. 이들의 전횡에 따른 정치사회적 혼란은 당대에 그치지 않았다. 그 영향으로 중국 사회가 난맥상에 빠졌는데 파장이 무려 400년간 지속되었다고 한다. 악영향이 오죽하였으면 오늘날에도 권력 주변에서 위세를 부리고 사익을 추구하는 자들을 십상시라 부르곤 한다.

 풀뿌리 정치의 기반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는 십상시 소위 문고리 권력의 권한 남용과 부패 문제가 늘 이슈가 되어 왔다. 지역의 미래 비전을 중심으로 한 시민참여형 정치활동이 부재하고, 이권을 중심으로 무리 지은 패거리 정치가 만연한 탓이다. 이권 카르텔과 줄 세우기에 의존하는 패거리 정치는 무능한 기득권 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막대한 돈과 혈연, 지연, 학연에 기대어 능력있는 시민의 정치적 진출을 차단하고,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유발한다.

 무엇보다 그 폐해가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사적 이익에 기반하기에 공공정책 수행에는 대단히 무능하고 때론 폭력적이다. 정치가 무능하면 행정은 무기력하고 소극적이 된다. 부당한 지시와 납득할 수 없는 인사가 반복되면, 공직자들은 윗분들 눈치만 살피게 된다. 최근 이태원, 오송역 지하차도의 참사와 잼버리 사태 등 공직 사회의 무기력한 대응으로 안타까운 재난이 반복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잼버리 사태에서도 그렇듯 문제가 터지면 언제나 시민들이 나서서 해결하고 있다. 주요국가들이 시민력, 신뢰자본, 커뮤니티 강화에 힘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복합위기에 대응하고 각종 재난과 정치적 부패를 예방하는 소중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참여와 힘을 키우자는 것이 국제적 추세임에도 정작 십상시들이 판을 치는 패거리 정치와 행정은 시민이 주도하고 참여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시민은 곧 자발적인 감시의 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후재난, 감염병,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그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역의 사정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큰 변화가 요구되는 대전환의 시대이다. 어느 때보다 시민의 참여와 동의 그리고 협력이 필요한 시절이다. 그런데 아카데미 극장 문제 하나 시민과 소통하며 해법을 찾지 못해 완력으로 찍어 누르는 정치력으로 어떻게 위기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열어가겠는가.

 무능한 패거리 정치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느 누가 자신들의 강고한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겠는가.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시정감시단을 조직하여 철저히 감시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지역을 걱정하는 전직 공직자나 전문가들이 함께하면 상당한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당정치의 전면적 혁신도 절실하다. 중앙정치만 탓할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부터 시민참여형 혁신정치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지역의 비전, 사회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다양한 모색과 시민주도의 공개적인 토론을 일상적인 정당 활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혈연, 지연, 학연, 돈에 기반한 이권 카르텔이 아니라 성실성과 실력을 겸비한 시민이면 누구나 우리를 대변하는 후보가 될 수 있는 정치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 함께 지켜보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최혁진 전 청와대 비서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