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3회 원주한지문화제.

2000년 전 로마 콜로세움, 원형극장을 가득 채운 5만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건 대결을 시작한다. 붉은 피가 갑옷을 적시면 관중들의 환호는 광기에 가깝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검투사의 대결, 기원 전후 로마 시민이 가장 좋아했던 축제이다. 로마의 여러 곳에서 열린 축제의 주최자는 로마의 귀족들인데,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열린 가장 규모가 크고 잔인한 검투사 경기의 주최자는 최고 권력자 황제였다.

리들리 스콧(Sir Ridley Scot) 감독이 제작하여 2000년 개봉한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역사적 사실(史實)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으나 로마인들이 열광했던 축제를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로마 역사를 살펴보면 악명 높은 황제로 꼽히는 네로와 코모두스 같은 황제들이 검투사 경기를 자주 개최한다. 로마 황제에게 검투사 경기는 관중석의 중앙에서 민중들의 환호를 얻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축제이다. 대체로 민중들과 함께 광기 어린 환호에 도취했던 황제들은 로마를 어려움에 빠트린 무능한 독재자였다. 반면 검투사 경기를 금지한 황제들은 민중들에게 인기는 없었지만 대체로 바른 정치로 로마 제국을 튼튼하게 운영했다.

1995년부터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난다. 축제의 규모는 커지고 내용은 지역의 역사 또는 전통문화와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는 축제도 속속 열리게 된다. 이들 원형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축제들이 성행하면서 지역성에 기반한 축제는 규모를 축소하거나 폐지되기도 한다. 원주의 경우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인 치악문화제가 폐지되었으니 이 방면에서는 모범(?)을 보였다 할 수 있다. 

지금 원주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한 한지문화제가 처음 열린 것은 1999년이다. 원주한지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무렵인데, 사찰의 자립 경영을 모색했던 영담 스님이 원주 단구동의 문 닫은 한지 공장을 인수하여 만든 한지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지류 문화재 영인(影印)에 사용되면서부터이다. 특히 영담 스님은 전승이 단절된 오색한지를 만들어 전승공예대전에서 특별상을 받게 되면서 원주한지는 더욱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원주가 한지 축제를 개최할 만큼 한지 도시로 이름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전주와 안동 같은 도시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인들이 원주보다 더 많은 한지를 생산하고 있었고 한지 도시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지 도시로 불리기에 지역성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개최된 1999년의 원주한지문화제는 대중들이 왜 원주에서 한지문화제를 개최하는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크게 성공했다. 축제의 성공 배경은 선거를 앞둔 김대중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축제장을 방문하고, 안성기, 강수연 같은 당시 영화계의 톱스타들과 정상급 모델들이 출연했으니 축제가 흥행에 실패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1999년 한지문화제가 열렸던 강원감영은 당시 원주시 제2청사(옛 원주군청)로 쓰였던 곳으로 필자의 근무지였고, 축제가 열린 강원감영선화당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축제가 열리게 된 전후 사정과 축제의 시작과 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축제를 마치고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에서 한지문화제를 개최했던 주요 인사는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그해 가을에 열린 두 번째 한지문화제 때 대통령 영부인이 방문하여 축사를 하고 한지를 뜨는 체험 장면은 언론 매체에서 다투어 뉴스를 장식한 이벤트였다. 예산 투입도 상상 이상이었다. 1999년 한지문화제를 처음 개최할 때부터 그때까지 원주의 대표축제로 열렸던 치악문화제를 넘어서는 규모였다. 

2011년에는 새로운 축제가 등장하는데 다이내믹댄싱카니발이다. 댄싱카니발은 2000년 시작하여 2010년까지 열린 원주국제따뚜를 폐지하고 시작된 축제이다. 처음 댄싱카니발이 개최되었을 때 거리에서 춤을 추며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은 우리 정서와는 낯설다 못해 어설픈 장면이 연출 되었다. 당시 18개 읍면동에서는 댄싱 공연팀을 조직하여 의무적으로 축제에 참가해야 했다. 자생적인 댄스 동아리가 없었던 때라 읍면동 공직자들에게 댄싱팀을 조직하여 출연시키는 일은 낯설고 어려운 업무였다. 

댄싱카니발이 시작되면서 필자를 비롯한 공직자들은 원주 댄싱카니발의 원형이 어디일까 궁금해하며 한동안 화제에 올리기도 했다. 몇몇은 브라질의 리오이거나 아니면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마츠리를 지목하기도 했는데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브라질의 리오카니발이나 일본의 마츠리는 모두 그 나라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인데 원주의 댄싱카니발은 그 무엇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닮은 것이 있다면 군중을 모으기 위해 춤이라는 도구를 빌린 거리 퍼레이드였다. 어쨌든 댄싱카니발은 해를 거듭하며 우승자에게 주는 시상금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가수 출연 그리고 군 장병을 객석에 앉히면서 군중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다. 

축제를 여는 목적은 같은 문화를 공유한 주민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외지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열리는 축제여야 한다. 어느 도시에서나 예산만 투입하면 가능한 축제는 자칫 군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로마 황제의 검투사 경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원주에서 열리고 있는 축제들이 얼마나 지역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축제를 기획하고 지원하는 공직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