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 설립된 향교를 기반으로 명륜이라는 이름의 동네, 학교 그리고 명륜당이 있다. 어릴 적 명륜초등학교 옆 동네에 살았고 명륜동에 친구가 있었고 오래전에 자주 드나들었던 일본 교토의 아트센터 옛 이름이 명륜소학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원주에 있는 명륜당은 처음 들어가 봤다. 아내의 고향 집인 전북 김제의 향교 앞을 지나갈 때마다 '참 잘 가꾸어져 있군'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원주에 명륜당이 잘 보존돼 있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그리고 오래된 것들은 어리석게도 제대로 마음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유독 새 옷, 새 집, 새 차를 좋아한다. 물론 이런 소비 패턴이 생산을 유발해 짧은 시간에 빠른 사회 성장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냉전과 저개발시대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해 누군가를 앞질러야 한다는 강박의 산물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경쟁에 특화된 우리는 성장의 가속도와 개인의 이익 사이에 있는 알고리즘을 정확히 분석할 줄 안다. 그리고 그 교묘한 방법으로 개인의 이익과 지위를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 할 수 있는 방법을 합법화하면서도 냉전 시대에 있을 법한 선전·선동을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이익을 위해 사용할 줄 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 들 줄 아는 이 세대들은 진보와 보수를 오고 가는 교묘함도 갖췄으며 한 손에는 비트코인을 한쪽 발에는 낡고 허름한 구두를 신을 줄 아는 연기력도 갖고 있다.

 옛것과 새것에 대한 가치도 전략과 경제성, 개인에게 돌아올 이익을 잣대로 정하기도 한다. 본인의 자식을 위해 교사를 집요하게 공격할 줄 알고 법과 여론에 호소하는 능력도 갖고 있는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냉전 시대에 교육되었지만 냉전세대를 경쟁으로 이긴 사람들이다. 

 남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외골수라고 하고 또 그런 사람들에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사회성의 원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냉전 시대의 세대들보다도 더 작고 편협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역사와 사회, 국가와 공동체를 이야기하면서도 공존의 가치를 실행하지 않고 있다.

 한옥의 옛 모습과 장점을 유지하면서 현재에 맞게 잘 고쳐 사는 경우도 대화와 타협의 사회적 산물이다. 덕수궁 안에는 옛 조선시대 궁궐과 러시아식 건축물, 유럽식 건축물이 함께 공존하며 역사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법체계도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며 끊임없이 시대에 맞게 수정되듯이 정책도 사람도, 사회도 합리적인 방법의 공생이 필요하다. 

 갈라파고스라는 섬이 있다. 에콰도르에서 1000km 거리에 있는 이 섬은 찰스 다윈의 자연도태설의 모태가 된 천혜의 섬이다. 육지에서 1000km라는 거리 때문에 환경이 잘 보존된 곳이었지만 이곳조차도 인간에 의한 오염과 환경 파괴로 위기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인간은 이 아름다운 섬과도 공존의 방법을 찾지 못해 이 섬의 생물 다양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갈라파고스섬의 환경문제를 다룬 공연을 얼마 전 명륜당에서 무대화했다. 1609년에 건축된 명륜당에서 환경 파괴로 죽어가는 갈라파고스섬의 거북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건 공존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공동 제작에 참여한 멕시코 극단 TETIEM 역시 사라져가는 갈라파고스 거북이에 관한 공연을 400여 년 된 명륜당에서 하게 된 것에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100년 이상 살 수 있는 갈라파고스 거북이가 환경 파괴로 인해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옛집이, 명륜당이 부서져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존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 명륜당에서 내려다보는 옛 동네도 좋고 명륜당을 바라보는 옛 처마도 보기 좋다. 보기 좋은 것을 넘어 지난 시간 명륜당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모습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공연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공간이고 40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수 도 있다. 새로운 공연장을 짓기보다 명륜당을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예술·역사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원주에는 명륜당이 있어 좋다. 사회의 윤리를 밝혀 주시오! 

원영오 연출가/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