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단구어린이공원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이곳은 어린이공원이며 축구장이 아닙니다. 축구공으로 인한 시설물 파손 등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어린이공원에서 축구를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공원시설을 훼손하는 경우 공원녹지법에 의거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라는 내용입니다.

 단구어린이공원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축구 자제'와 '벌금 경고'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짬만 나면 공원 공터에 나와 공을 차는 동네 어린이들입니다. 이곳에선 평일 방과후나 휴일 오후에 축구하는 어린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아이들이 매일 나와서 몇 시간씩 축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요일마다 시간대마다 그 멤버들이 다릅니다.

 사실 공원 인근 어린이들은 흩어진 시간을 모아서 축구를 합니다. 학원수업이 없는 날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넘어가는 짬에 쫓기듯 들러서 그리고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10분, 20분 동안. 가방을 내릴 겨를도 없이 잠깐 끼었다가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자제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린 겁니다. '자제'라는 표현을 썼지만 축구공 금지 표시와 '벌금에 처한다'라는 말은 '축구를 하지 마라'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이런 행정처리가 어디 있어! 저 현수막 때문에 아이들이 코빼기도 안 비쳐!"
 공원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늘 흐믓하게 지켜보시던 한 어르신이 분통을 터뜨립니다.
 '현수막을 게첨한 담당 공무원도 그 대상이 어린이들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동네 어린이들에게 벌금으로 으름장을 놓는 건가?' 싶어 단구동 주민센터 안전도시과로 전화해보았습니다. 

 단구동 주민 센터 담당공무원과의 통화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축구공이 인근 상가 유리를 때리는 경우도 있었고 노상주차장 주차차량에 떨어지기도 해서 몇 년간 민원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주행하는 차량 범퍼에 축구공이 부딪히면서 범퍼가 깨지는 사고도 있었다.

 잦은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동에서도 많은 노력(인근 학교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축구 관련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주의를 부탁한다.'는 공문 발송)을 기울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강력한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게첨했고 급하게 예산을 세워 민원이 가장 많은 쪽으로 펜스도 세웠다. 펜스를 더 높이고 싶어도 체육공원이 아니라 시설 예산을 세울 법적 근거가 없다.'

 행정처리상 현수막은 3개월 이상 게첨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축구금지' 현수막에 대한 당사자 어린이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어린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망했다. 축구화도 새로 샀는데…", "그래. 너 축구화 샀다고 카톡에다 '놀자, 놀자' 그러면서 나왔는데 이게(현수막) 있어가지고 못했잖아. 축구를 못하니까 놀 게 없어요" 
공원에서 축구하다 공이 도로로 넘어가면 위험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공이 터질까 봐 걱정했다'고 합니다. '가끔 공이 차 밑으로 들어가면 꺼낼 때 무서웠다'고도 하고요. 

 이제 단구공원 어린이들은 어디에서 축구를 할까요? "주말에 한라대(차로 30분 거리)에 가서 해요. 체육관엔 잔디 공사한다고 못 들어가고 학교 운동장도 공사 중이에요.", "저는 축구학원에 다니는데 이제 학원에서만 할 수 있어요.", "저는 이제 6학년이라 학원이 많아서 평일에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이 있어요. 그래도 동생들이랑 여기서 축구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못해요. 다른 데로 가면 학원에 늦어서…." 

 '어린이는 도시 공간을 얼마나 이용하고 있을까. 대도시에 거주하는 7~12세의 어린이 10명에게 물었더니 8명이 자기 동네는 어린이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고 했다. 지역은 달라도 "놀 곳이 없다"는 이유는 같았다.' - <도시 전체가 '노키즈존'…놀이터가 7만개인데 "놀 곳이 없어요">경향신문 2022-10-11  

 원주시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필자가 속한 '놀이하는사람들 강원원주지회'가 작년 5월 원주시 아동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어린이들은 '마을에서 어린이로 살기 가장 불편한 점'을 '놀 곳이 마땅하지 않다'로 뽑았습니다. 좋고 안전한 놀이터는 멀리 있거나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서 접근이 어렵고, 공공 놀이터는 연령에 맞지 않아서 재미가 없거나 어른들의 잔소리가 많아서 자유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단구어린이공원은 마을 어린이들의 동선 안에 있고 넓은 공터도 있어서 어린이들이 흩어진 시간을 모아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 그곳에서 어린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근본원인을 찾아보지 않고 규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원주시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추진 중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담긴 아동의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고 아동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아동에게 친화적인 환경을 가진 지자체'를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동에게 친화적인 환경은 아동시민의 바람과 욕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답하는 데서 시작될 겁니다. 
'자유롭고 안전한 놀 공간'이라는 원주시 아동들의 요구에 시 정부가 책임있게 답해주길 기대합니다.

안정민 놀이하는사람들 강원원주지회 놀이활동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