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5월 원주시민들이 문화재보존과학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보존 처리 전 몸돌.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가 몸을 떨어 받아보니 귀에 익은 목소리다. 필자가 재직할 때 부론면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일했던 김석한 님이다. 김석한 님은 필자가 지광국사탑 귀향을 위하여 애쓸 때 도움을 주었던 분이다. 

해린 스님 승탑이 돌아왔다는 소식과 다음 주(8월 10일) 원주시에서 귀향 행사를 연다는 소식을 전하며 알고 있냐고 물어보는데 다소 흥분한 목소리이다. 신문과 박물관 식구들에게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지인들과 함께 가보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어지는 대화 속에 서운함이 묻어있다. 

퇴직 이후 가끔 강의로 시민들을 만나거나 사적인 자리에서 지인들을 만날 때 공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필자는 망설임 없이 지광국사탑을 다시 원주로 모셔 온 일이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지만 '강원감영 복원이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나요'라고 되물어오는 사람도 많았다.

사실 강원감영은 도시 중심에 있고 복원 기간과 사업비도 훨씬 많이 들었으니 시민들이 감영 복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런 생각은 필자와 함께 일하고, 만났던 공무원들과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스님의 무덤인 승탑보다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수부(首府) 유산인 감영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도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1911년 일제강점기 일본인 골동상에 의하여 제자리를 떠나 1950년 한국전쟁 때 서울에서 포탄을 맞아 부서진 지광국사탑의 기구한 운명을 들여다보면 지광국사탑의 귀향은 필자가 수행한 그 어떤 공무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의미가 있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에 제자리를 떠난 우리나라의 수많은 이산 문화재 중 제자리로 돌아오는 첫 번째 문화재이니 우리 정부의 문화 정책에서도 보기 드믄 일이다. 해방되고 반백 년이 넘도록 우리 정부에서 물려받은 식민정부의 유습을 깨뜨린 첫 사례이니 필자에게는 잊지 못할 일이다. 

▲ 1957년 수리할 때 맞추지 못한 파편을 몸돌 윗부분 네모난 사리공에 담아 둔 모습.

8월 10일, 2016년 3월 서울 경복궁 뜰에 있던 지광국사탑의 보존처리를 위하여 대전의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가기 위한 해체식 이후 7년 만에 법천사터에서 지광국사탑 환수식이 열린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오는 지광국사탑은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한다. 탑을 이루고 있던 33개의 부재 중 31개 만 돌아오기 때문이다. 탑을 이루는 구성품 중 가장 중요한 탑의 몸돌(塔身石 탑신석)과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크게 파손된 지붕돌(屋蓋石 옥개석)은 대전에 남았기 때문이다. 

2016년 대전의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탑을 옮긴 후 지금까지 보존처리의 대부분은 부서진 옥개석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한 성형작업이었다. 성형수술은 1957년 수리할 때 사용한 시멘트를 제거하고 새로운 돌에 원래 탑과 똑같은 모습으로 조각하여 접착제로 붙이는 일이다. 탑의 몸돌은 해린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사리를 모신 부재로 지광국사탑의 심장이다. 그래서 몸돌의 표면 조각은 다른 부재보다 화려하고 장엄할 뿐만 아니라 문양이 가진 의미가 다른 승탑에서 찾기 어려운 특별함이 있다. 그런데 왜 이번에 함께 돌아오지 못할까! 

전해 들은 바로는 탑의 핵심 부재를 이번에 함께 옮기지 못하는 이유를 '수리를 담당한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조금 더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필자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광국사탑의 실질적인 보존처리는 대략 2년여 전에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동안 상태를 살필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석조문화재 보존처리실을 지광국사탑이 차지하고 있어 다른 작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전할 명분은 분명하다. 비유하자면 병실이 부족한 병원에서 상태가 호전된 환자를 퇴원시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왜 핵심 부재는 보내지 않는 걸까?

지광국사탑의 원주 귀향이 결정된 것은 2019년 6월이다. 문화재위원회에서 보존처리를 마치면 원주 법천사에서 보존할 것을 의결하였고, 문화재청장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되자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크게 다루었다. 귀향이 결정되기까지 여러분들이 애써주셨다. 직함을 가지고 환수 운동을 하신 분들이야 이미 시민들이 알고 있을 테지만, 말없이 애써주신 고마운 분들도 많이 있다.

지광국사탑의 귀향을 바라는 절절함을 시로 써 보내 준 고창영 시인, 바쁜 농사일을 뒤로하고 발 벗고 나선 김석한 농부 그리고 밤을 새워가며 지광국사 950주기 추모제와, 환수축하 음악회를 열어 시민들에게 지광국사탑 환수 당위성을 알려준 이용준 군!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아직 온전하게 모셔 오지 못했지만, 이제 남은 일은 112년 만에 돌아오는 지광국사탑 귀향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원래 자리에 잘 모시는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