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4월 개최된 제1회 군도제 (사진: 원주역사박물관)

요란한 음악 소리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며 무슨 날이냐고 물어보니 다들 필자처럼 놀란 표정이다. 그 중 한 사람이 유명한 대중가수 싸이의 원주 공연이 주말에 예정돼 있는데 그 공연과 관련된 음향 테스트인 것 같다고 한다. 필자가 살고, 근무하는 곳은 원주 종합운동장과 따뚜 공연장 인근이다.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음악을 들으며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필자는 싸이라는 가수를 잘 모르지만 그의 공연은 젊은 이들에게 축제의 장이다.  

지난 봄 영월 단종제, 강릉 단오제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축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야외활동이 활발할 때이니 여럿이 모여 즐기기 좋은 축제의 계절이다. 봄에 시작된 축제는 추수가 끝나는 가을에 절정을 이루다 겨울 초입까지 이어진다. 도시마다 고유한 이야기를 주제로 축제가 열린다. 도시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성 짙은 축제는 많은 여행객을 불러들이는 관광자원이다. 그래서 뚜렷한 자연경관을 지니지 못한 도시에서는 지역만의 특성을 살린 축제를 열어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더욱 애쓴다. 그러나 원주는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축제가 없다. 적확하게 말하자면 과거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축제의 기원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고대의 제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고대의 제의는 가뭄이나 홍수, 태풍과 같은 인류가 감당하기 힘든 위협적인 자연현상으로부터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산과 강, 바다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에서 규범으로 정해 영험한 산과 큰 강, 바다의 신에게 지내는 제의를 지냈다.     

원주에서 고대의 제의 전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제의는 동악제(東岳祭)이다. 동악제는 조선시대 5악 중 하나인 치악산 산신에게 제의(祭儀)를 올려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편안함을 기원하는 제의이다. 국가의 도읍지를 중심으로 중앙과 동서남북 사방의 신령스러운 다섯 산을 오악(五嶽)으로 정하고 제사지내는 것은 기원이 오래된 동양의 전통 신앙이다. 중국에서는 숭산(崇山)을 중악으로 정하고 동서남북에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을 오악으로 정했다. 우리나라는 백악산(白嶽山)을 중악으로, 치악산(雉岳山)을 동악, 송악산(松嶽山)을 서악, 관악산(冠岳山)을 남악, 감악산(紺嶽山)을 북악으로 정하고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지냈다. 

치악산 산신령에게 제의를 올리는 동악제단은 국향사(國享寺) 앞 송림에 있는 동악단이다. 국향사의 사찰이름 국향은 '나라 제사 지내는 절'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사찰에서 국형(國亨)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든 도로 이정표와 도서에도 국형사로 표기되어 있다. 원주의 토박이들조차도 정확한 이름을 모를 뿐만 아니라 가끔 사찰이름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조선시대의 관찬 기록과 사찰 중수기에는 국향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때에 오악의 산신령에게 지내는 제의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나라 제사로 성대하고 엄격했다. 제의에 필요한 제물과 절차를 국가의 의전절차에 따라 규정하였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VIP가 참석하지 않았지만 국가행사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오례편에 따르면 강원도에서 동악제와 같은 국가제의는 원주의 동악제와 양양의 동해신제 두 곳 뿐이었다. 치악산의 산신령에게 지내는 동악제 역시 조정에서 제의에 필요한 축문과 향을 보내고, 원주 목사를 중심으로 인근 7개 고을 수령들이 참여하였으니 지금보다 성대한 제의였다. 제의를 마치고 이어진 뒤풀이가 바로 축제였을 것이다.

원주에서 열린 첫 번째 현대적 의미의 축제는 군도제(軍都祭)이다. 1971년 4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펼쳐진 제1회 군도제는 원주에서 처음 열리는 축제이니 만큼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환호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재건과 경제발전에 온 힘을 쏟던 때이니 축제가 빈곤한 시기였다. 1954년 제1야전군 사령부가 원주에 설치되고 한동안 원주는 군사도시로 자리매김했으니 군도제는 나름 지역성을 담보한 축제였다. 당시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지낸 추모제가 발전하여 1963년 처음 열린 진해 군항제와 강릉 단오제, 영월 단종제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역 축제였다.               

그러나 군도제는 제1회를 마치고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축제의 내용이 국군 의장대 시가행진, 국군 아저씨 그리기, 반공 포스터전시회, 역대 군복 가장행렬, 병기 및 반공 사진전 등 군과 관련된 행사에 편중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예산을 지원해야할 당시 원주시와 원주군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