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있는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

인류 역사상 가장 혹독한 전쟁으로 평가받는 한국전쟁은 공존의 지혜와 가치를 망각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인류문명뿐만 아니라 자연생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공존의 원리입니다.

사람과 동물이 숨 쉬고 살 수 있는 산소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것은 바다에 사는 식물 프랑크톤입니다.  지구에 있는 산소의 절반 이상이 식물 프랑크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하니 숲에서 얻는 산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입니다. 우리가 하찮은 미물로 알고 있는 식물 프랑크톤은 지구상 모든 동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숨줄인 셈이지요.

식물 프랑크톤은 고래 똥을 먹고 삽니다. 고래 중에서도 몸길이가 20m를 넘고 무게가 150t이 넘는 대왕고래나 혹등고래 같은 대형 고래의 똥이 프랑크톤을 살리는 주요 먹이입니다. 해수면 근처에서 고래 똥을 먹은 프랑크톤은 광합성 작용을 통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동물성 프랑크톤에 먹히거나 서서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또 프랑크톤은 고래의 먹이가 됩니다. 결국 고래 똥이 프랑크톤을 살리고 산소를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깊은 바다 밑에 저장하는 대순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인류는 고래에게, 그의 똥에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지난해 말 촉발된 아카데미극장 보존과 철거가 결국 법정으로 옮겨 간다고 합니다. 무리하게 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절차상 문제를 법정에서 다투게 된 것이지요. 아카데미극장 문제도 공존의 지혜가 부족한 것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극장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으며, 원주시 경제에 부담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차례 주장한 것처럼 아카데미극장은 근대기 원주의 도시 정체성을 지닌 보존 해야 할 가치가 넘치는 건축물입니다. 하찮은 고래 똥이 지구를 살리는 것처럼 낡고 보잘것없는 극장 건물은 한때 생업에 지친 원주시민에게 활력을 주었던 원천이자 원주문화예술의 요람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전쟁 후 폐허가 된 원주를 재건에 지친 원주시민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던 극장에 고마움을 표해야 합니다.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가 남긴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넘쳐나는 인도네시아는 공존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처럼 오랫동안 이민족의 식민 지배를 겪었던 인도네시아의 독립 기념일은 8월 17일, 우리의 광복절과 같은 시기입니다. 식민 통치를 겪었던 뼈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다행인 것은 냉전 시기 한국전쟁처럼 가혹한 희생은 겪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여러 문명이 조화롭고 화려하게 꽃피웠던 곳이고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Jogjakarta)는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처럼 고대의 문화유산이 많은 도시입니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보로부두르(Borobudur)와 힌두 사원인 프람바난(Prambanan)을 보유한 세계문화유산 보유도시입니다. 특히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은 세계 3대 불교 사원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Angkor Wat), 미얀마 바간(Bagan) 보다 앞선 시기에 건설된 사원입니다. 건축 벽면에 새겨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와 신화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고 정교합니다.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 문화를 한곳에서 경험할 수 있으니 더할 수 없는 관광 자원을 가진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필자가 부러운 것은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고대사원보다 족자카르타에서 볼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입니다. 도시를 채우고 있는 건축물은 우리 기준으로는 보잘것없는 낡은 건물이 대부분이지만 현대식 건물과 잘 어우러져 인도네시아만의 풍물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가집 한 채 보기 어려운 한국의 도시와 달리 인도네시아는 그들 고유의 건축물과 근대기의 낡은 콘크리트 건물 그리고 고대 유적이 모두 함께 공존하는 조화로운 도시입니다. 

지금 장마가 시작되는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건기입니다. 다양한 종교와 과거와 현재를 모두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는 평화롭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모두 여유롭고 친절합니다. 적도 아래에 있는 남국 인도네시아에서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떠오르는 건 공존의 미덕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들 때문이겠지요. 공존으로 매력적인 도시 족자카르타에서 이 글을 씁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