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휴거, 빌거, 엘사에 이어 개근거지…별걸 다 줄여서 말하는, 별다줄 세태를 이해하신다면 또 어떤 말의 줄임인가보다 하고 눈치채실겁니다. 이 네 단어는 모두 특정 계층을 비하하는 의미를 포함하는 요즘 아이들의 줄임 언어입니다. 

 80년대 태어나 학교를 다닌 세대에는 학교를 '개근'한다는 것은 가고 싶지 않다는 유혹, 질병으로 인한 아픔, 불의의 사고 등 자의 및 타의의 장애물들을 다 뛰어넘어 이룩한 성과로 칭송받았습니다. '개근상'의 존재가 그 증거였지요. 이런 개근의 의미가 더 이상 성과가 아닌 비하, 차별의 타겟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주5일 등교, 체험학습제가 생겨나며 과거에 비해 학기 중에도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해외로 단기 연수를 가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모든 학생이 이 제도들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느냐? 하면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계층이 낮은 가정의 보호자들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에 바빠, 그리고 쉬는 날은 본인의 몸과 머리도 쉬어야했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체험으로 경험치를 쌓게 해주는 것이 힘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며 갈수록 아이들의 사회적, 문화적 자본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아주 최근에 대두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지역아동센터 등 아동·청소년 사회복지기관들에서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방학마다 '특별' 프로그램으로 테마파크 견학, 캠프, 여행 등을 계획, 수행하여 보호자를 대신하면서요. 이마저도 없었다면 가정의 경제적 배경에 따른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자본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겠지만 그래서 그 간극을 좁혔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아닐 것"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우려되는 현실은 아동·청소년들이 집, 차, 여행 등 겉으로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계층을 나누고 비하, 차별의 단어들을 생산하며 누군가는 이것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조적으로 낙인감을 깊숙이 내재화한다는 것입니다. 교실 안에서는 이미 성, 학업성적, 외모 등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혐오하는 현상이 목격되어왔는데 그것이 가정의 경제적 배경으로 더해진 것입니다. 학기 중에 체험학습을 신청하지 않고 개근하는 학생을 '개근거지'라고 부르며 말이지요.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요? 역시 요즘 아이들의 문제인가요?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 '작은 사회'라고 이야기합니다. 사회 문화, 풍토가 고스란히 교실로 옮겨왔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분위기, 풍토는 어떤가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온라인상의 해시태그들을 말풍선으로 만들어본다면, #럭셔리 #부동산 #코인 #주식 #연예인 #해외여행 #명품 #외제차 #인증 등의 단어들이 진하고 크게 표현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면 너무 과장일까요? 소득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우리 사회의 풍토가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해외 국가와는 다르게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기준으로 자가, 차, 월급, 예금이 거론되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증한다고 봅니다. 이런 것을 기준으로 과시, 비교하는 문화까지 더해져 있습니다. 또한 SNS, 인터넷 미디어, 커뮤니티 공간에서 맘충, 급식충, 출근충 등 '충' 접미사를 사용하여 자신과 다른 대상을 인물, 사물, 사상에 관계없이 비하하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며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무디게 반응합니다. 

 이러한 사회 풍토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학교 밖 사회에서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 소수를 향한 혐오의 언어 생산과 표현의 일상화가 고스란히 학교 내 문화로 들어옵니다. 학교는 건강한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의 장입니다.

 무엇이 차별이고 그것이 왜 문제인가를 교육받아야 할 장에서 오히려 소수자를 비하하고 차별하는 문화가 계속된다면 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다양한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 문화는 더욱 공고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불가항력적인 요인들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 이른 시기에 낙인감, 무기력함을 내재화한다면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질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요즘 아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우리 어른들이 함께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조수민 한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