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개최된 제13회 치악문화제 국악공연 리플렛.

원주 고유의 축제로 관에서 주최하는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축제는 치악문화제이다. 1971년 제1회 군도제가 개최되었지만 이어지지 못하고 한 번의 행사를 마치고 중단되었다. 그 후 10년이 지난 1981년 치악제가 개최되었다. 10년 동안 원주를 대표할 도시 고유의 축제가 없었으니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원주는 축제의 불모지였다. 

강원도의 대표 지역 축제로 손꼽는 강릉단오제는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지정되었고,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에 등재되었다. 영월의 단종제는 1967년 처음 개최된 이래 2023년까지 56회를 이어오고 있다. 허균(許筠, 1569~1618)은 대관령에서 산신을 모시고 내려오는 단오제 일행을 보고 '대관령의 신이 영험하여 해마다 5월이면 사람들이 대관령에 올라가서 신을 맞이하여 즐겁게 해준다고 하였다.'는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의 기록을 보면 단오제의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단종제례의 기원은 조선 중종 11년(1516) 우승지 신상(申常)이 제례를 지낸 기록이 있으니 두 축제 모두 역사가 오랜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원주의 대표축제인 치악문화제는 동악제(東岳祭)를 모태로 한다. 동악제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설이 전해온다. 첫 째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둘째아들이자 태조의 뒤를 이은 정종(1357~1419) 임금의 둘째 딸 희희공주가 뇌점병이 걸렸을 때 치악산 고문암(古文庵)에서 기도를 올려 병이 나앗다. 이후 나라에서 제사 지낸 절이라 하여 이름을 국향사(國享寺)로 고쳤다고 한다. 희희공주가 앓았던 뇌점병은 폐결핵으로 당시에는 쉽게 고치기 어려운 불치병이었다. 정종 임금은 10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25명(17남 8녀)의 자녀를 얻었는데, 둘째딸 희희공주는 네 번째 부인 숙의기씨가 출산한 4남 2녀 중 첫째 딸인 숙신(淑愼)옹주이다. 

두 번째는 세종실록 오례의(五禮儀) 편에서 찾을 수 있다. 오례의는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등 나라에서 행하는 국가의례(國家儀禮)의 형식과 절차를 규정한 국가규범이다. 세종실록 오례의 편에는 치악산을 명산대천(名山大川)으로 정하고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 중 소사의 절차에 따라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보내 지방관이 제사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동악제의 기원은 희희공주 치유설과 세종실록의 기록으로 보면 조선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제의이다.   

지금 치악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동악단은 정면 세 칸의 한옥 기와집이지만 토지신과 곡식을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단(社稷壇)과 이름난 산과 강, 바다의 신에게 지내는 곳에는 건물대신 돌로 단을 쌓아 제사 지내는 제단을 만들었다. 세종실록 오례의에 따르면 동악단의 규모는 대략 사방 6m, 높이는 81cm이며 사방에 석축을 쌓고 표면에는 황토를 깔았던 것으로 보인다. 

치악문화제의 모태는 조선시대 때부터 거행된 동악제이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가장 많았던 행사는 '관찰사순력행차'였다. 영월군에서 공직을 시작했던 필자는 1995년 원주시와 군이 통합되면서 원주시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필자의 업무는 문화재관리가 주 업무였지만 영월군에서 단종문화제를 주관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1995년 개최된 치악문화제 업무를 필자가 맡게 된다. 그러나 치악문화제는 필자가 주관했던 영월 단종제와 비교하였을 때 축제의 규모와 내용에 있어서 원주시의 도시규모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빈약했다.

강원감영제 업무를 맡은 필자는 축제의 모든 내용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시민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는 컨텐츠가 필요했다. 한 달여 고민 끝에 조선시대 500년 동안 강원감영 소재지였던 원주를 축제의 테마로 끌어 들였고, 그렇게 시작된 행사가 '관찰사순력행차"이다. 200여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가장행렬을 처음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관찰사 순력에 대한 고증과 출연자들의 복장과 깃발, 관찰사가 타고 갈 가마 등 소품들을 마련하고 출연자들의 행동 요령도 일러주는 등 노련한 연출가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으니 필자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장행령에 출연할 인원이 문제였는데, 첫 번째 관찰사순력행차는 원주농업고등학교(현재 영서고등학교) 학생 200여 명이 참여해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관찰사순력행차는 이후 치악문화제의 대표행사가 되었다. 1981년 시작되어 원주의 대표축제로 자리 잡았던 치악문화제는 2004년 23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2005년부터 강원감영제가 시작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