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섯 집을 다녀왔다. 

 먼저 흥업 LH임대 아파트에 계신 80세 할아버지 집에 갔다. 할아버지는 장기요양 재등급 신청에 필요한 의사소견서 요청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중풍 후유증과 어지러움으로 보행이 어려워 누워계셨고 간신히 실내에서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에 가실 정도였다.

 여동생이 가까이 있어 자주 온다고 하고 요양보호사가 매일 3시간씩 돌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뵈니 옛 부부의원 환자이어서 반가웠는데 할아버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왕진 다니면서 뜻밖에 옛 단골 환자를 만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왕진을 다니지 않았다면 옛날 환자들을 다시 볼 수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서로 알아보는 경우에는 만나서 놀랍고 반가워한다. 옛 친구나 가족 만나는 것 같다.

 단계아파트에 갔다. 오랜만에 와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에는 무척 좋은 아파트였는데 이렇게 황량하게 변하다니. 빈집도 있는 것 같고 오래된 큰 나무들만이 옛날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90세 할머니는 5층에 계셨다. 할머니도 장기요양 재 등급용 의사소견서 발급 때문에 갔다.

 사실 처음 요양등급을 받거나 재 등급 때에도 의사소견서가 필요한데, 걷지도 못하는 환자가 병원에 소견서 끊으러 간다는 것은 대단히 불편한 일이고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데 허리가 아프고 다리에 기운이 없어 걷지를 못하시고 화장실에는 기어서 가신다고 한다. 태장에 사는 며느님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하루 두 번씩 와서 돌보고 계셨다.

 할머니 성격이 괴팍해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붙어있지를 못한다고 한다. 할머니는 "언제 가?" 나에게 물으시고, "빨리 가고 싶다"고 하신다. 나는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좋아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잘 못 하셔서 체중이 30kg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마르셨다.

 몇 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못하고 병원 약도 중단되었다. 미장원에도 못 나가고 출장 오는 미용사도 못 구해서 긴 흰 머리카락이 할머니를 더 말라보이게 했다. 식사 못 하는 분을 위해 나온 영양식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처방해드리겠다고 하고 나왔다.

 우산동 우무개 마을에 갔다. 77세 할아버지는 안방 침대에 누워계셨다. 1년 전 뇌졸중과 간경화로 걷지를 못하게 되고 와상환자(움직이는 것이 불편하여 누워서 지내는 환자)가 되었다. 2주에 한 번씩 요도관 교환을 위해서 밝음의원에서 가정간호를 받고 계신데, 3개월에 한 번씩 의사의 진료가 필요하다.

 우무개에 29년째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할아버지 곁을 지키고 계시고 요양보호사가 오고 있다. 벽에는 가족사진과 한창 젊었을 때의 할아버지 사진이 걸려있는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마당 구석에 있는 모판에 들깨 모가 싹을 내고 있는데 새들이 파먹어서 반밖에 안 남았다고 인사하러 나온 할머니는 말한다. 왕진 다니면서 원주 구석구석을 다녀보는 것도 왕진의 즐거움 중 하나다. 원주에 온 지 40년이 된 나에게 가보지 않은 곳이 너무 많다.

 태장 어느 세동밖에 없는 작은 빌라에 갔다. 이곳에는 텃밭이 넓고 채소로 꽉 차 있었다. 상추, 고추, 오이, 호박 등등 이곳 빌라 주민들이 다 먹어도 남을 정도였다. 83세 할머니는 1층에 사셨고 심장이 나빠서 걱정되어 생활지원사가 진료를 요청하였다. 생활지원사 제도는 행정복지센터에서 독거 어르신에게 생활 관리를 위해서 파견하는 제도이다. 할머니는 몸이 아파서 많이 힘드셨지만, 우리에게 주스를 줄 정도로 마음은 여유가 있으셨다. 

 마지막으로 자유시장 시계탑 아래로 갔다. 60세 정도의 노숙인이 있는데 종일 이곳 의자에만 앉아 있다. 전에는 다리에 염증(봉와직염)이 심해서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중앙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진단서가 필요해서 왕진 의뢰를 했다.

 이분은 대화도 거부하고 치료도 거절해서 접근 자체가 어려운 분이시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인근 식당을 계약해서 이분이 혼자 가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고, 노숙인센터(최양업 토마스의 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간단한 먹을 것을 드리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 곁에는 가족이 있고 요양보호사와 생활지원사가 계셨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독거 어르신들이 많아지고 노인 돌봄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요양원보다는 살던 집에서 요양을 받고 임종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재택의료(집에서의 요양이나 임종을 도와주는 의료제도)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곽병은 밝음의원 원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