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은 젊은이가 있다. 하지만 늙은 의사는 병이 없다고 한다. 젊은이는 창문 너머 병원 뒤뜰에 있는 한 여자를 본다. 여자는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다. 한나절이 지났건만 여자에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덧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간다. 젊은이는 여자의 건강도, 자신의 건강도 회복되길 바라며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이것은 윤동주 시인의 시 '병원'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인데 아픈 사람을 고치는 곳이 병원이니, 시인이 처음 준비한 시집의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아니라 '병원'이었다고 한다. 아파서 병원을 찾았으나 의사는 병이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건만…, 저 앞에는 한 눈에도 아파 보이는 여자가 햇빛 아래 누워있다. 그래서 시인은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이해받지 못한 환자로서의 넋두리가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말이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더 아픈 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가 표류하고 있지만, 이 논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있다. 최저임금법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된 장애인 근로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매년 약 1만 명의 장애인은 최저임금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월 38만 원가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최저임금법 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경우,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고용노동부에 최저임금 적용 제외 신청을 한 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작업능력평가를 거쳐 인가를 받으면 최저임금적용을 제외 받는다. 

 이는 일반근로자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낮거나,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장애인 취업이 힘들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또 중증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의 부담도 낮춰줄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문제는 최저임금 적용에서 빠진 장애인 근로자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 지난 2019년 8천971명이었던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자는 2021년 9천475명으로 증가하더니 지난해는 1만 명을 넘어섰다.

 당연히 이들이 받는 임금도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노동부와 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장애인 근로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37만9천622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이 담긴 '최저임금법 제7조'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지급하는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이 장애인들의 일반 노동시장 진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장애인들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억지로 노동력을 창출하도록 훈련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최저임금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외침에도 정부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2018년 최저임금 적용 제외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민관합동으로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개편 TF'를 구성하기도 했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오늘도 장애인들은 "직업을 가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보낸다.

 적은 임금이라도 갖지 못하는 장애인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전부다. 

배찰스(가명,원주투데이 독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