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주 시민들 입에서는 "자고 났더니 문화의 불모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원주투데이에 실린 원주시의회 손준기 의원의 글에 따르면 "원주문화재단은 코로나19로 문화예술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2020~2022년 사업대비 절반이하로 축소됐다.

 관리가 힘든 사업들은 배제된 채, 벚꽃 버스킹 공연과 5월 가정의 달 기획공연, 달랑 2차례를 진행한 것에 불과한데 사용예산은 비슷하다."고 한다. 업무능력이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지방선거에서 지대한 공로(?)를 세우면서 자치단체장의 표심관리로 전락된 원주문화재단은 멈춰선 원주문화를 이어나갈 생각이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복합문화교육센터는 민선8기 9개월 만에 지난 3월 '남산골문화센터'로 명칭을 바꿨다. 원주시는 2019년 제 1차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되고, 1년차 우수도시, 2년차 최우수도시로 평가를 받았지만 총 사업기간 5년 중 3년 만에 문화도시 사업을 주도적으로 운영해오던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는 지난 3월 원주시의 보조금 중단 통보 열흘 만에 해산되었다.

 행구동에 세워진 '생명협동교육관'은 원주의 정신적 지주였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이 땅에 생명사상을 일으키며 협동조합을 전파했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지난 5월 원주시는 그 곳도 민선8기 11개월 만에 '미래성장교육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문을 닫은 채 올해 말까지 임시휴관에 들어갔다. 원주의 정체성을 말살하면서 '전임자 흔적지우기'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부분이다.

 원주의 정체성을 이야기 한다면 생명운동과 함께 한살림 운동 등을 통해 협동조합을 처음 시작한 원주는 '생명협동'의 도시이다. 고려말 영원산성에서 외세에 저항했던 원충갑 장군과 일제에 맞섰던 김제갑 목사, 민긍호 의병장 그리고 근 현대사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60년대 원주농고(영서고등학교)를 주측으로 한 원주지역 고교생들의 3,15부정선거에 대한 투쟁과 대성고를 주측으로 했던 굴욕적한일회담 반대 투쟁 등은 원주를 '저항실천'의 도시로 만들었고 70년대 박정희 유신군사독제정권에 대한 저항과 1987년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원주의 6월 항쟁을 통해 원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기록되고 있다.

 과거 원주에는 1군사령부 군인공제회에서 운영하는 군인극장과 민간인 정운학씨(1915~2022)가 운영하던 시공관극장(1962년 개관), 아카데미극장(1963년 개관), 원주극장(1956년, 현 중앙동우체국), 문화극장(1967년 개관)이 있었다. 당시 4개의 극장을 운영했던 정운학씨는 원주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기독병원 초대 원장을 지낸 문창모 박사와 함께 원주를 문화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황해도 해주에서 내려온 정운학씨는 일제강점기에 취득한 영사기사 자격증 덕분에 서울에서 영화산업에 관한 업무를 도맡아 왔다. 그 분의 인연으로 인해 원주사람들은 서울의 대한극장, 피카디리극장 등과 동시에 개봉되는 대작의 서양 고전 영화를 서울 사람과 같은 시간에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었다. 

 특히 과거에는 영화의 흥행을 예측하기 위해 지방에서 먼저 시사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극장이 바로 시공관과 아카데미극장이었다. 그래서 원주는 '일상예술'의 도시로 명명되기도 했던 시절이다. 극장 덕분에 원주사람들은 일찍이 서구 유럽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헐리우드 문화의 긍정적 수용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아카데미극장이 지금 원주시와 '일부 상인들'에 의해 철거위기를 맞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에 관한 원주시의 페러다임을 생각하며 요즘 한없이 후진하고 있는 원주문화를 걱정하게 된다,

 원주 사람들은 청량리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기차 덕분에 열차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었다. 원주시내를 지나며 반곡역, 금대리 백척철교와 똬리굴을 지나 신림으로 연결되던 철길은 노선변경으로 인해 서원주역에서 무실동 원주역을 거처 백운산 터널 속으로 곧바로 충청북도 봉양으로 빠져나간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예전처럼 철로를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원주역이나 만종역이 아니면 볼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 옛 철길을 남겨두고 "여기가 예전에 기차가 다니던 철길이란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과 손잡고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되는 길이 '바람길숲'인데 원주시에서는 그 철로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있다. 원주의 추억과 역사를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군대로 치면 선출직 공무원은 계급만 높은 신임 소대장일 뿐이다. 오히려 원주의 살림살이는 미관말직이라도 그것을 운영해온 공무원들이 더 베테랑이다. '전임자의 흔적 지우기'로 '감정에 치우친 행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임금을 꾸짖는 선비처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 할 수 있는 '저항실천'이 필요할 때다.

 후배 소대장에게 아첨하는 '이방' 때문인지 원주시 인사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왕조시대의 예를 들어보자. 간신은 비열하고 배신이 몸에 배어 있기에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임기응변에도 능한 처세술의 달인이다. 하지만 아첨만 일삼는 간신들은 결국 조정뿐만 아니라 백성에게도 지탄을 받는다. 원주의 역사 말살에 누가 기여했는지 원주시민은 반드시 기억한다는 말이다.

유창목 원인동 주민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