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밑 분지에서 자라다 중학시절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피니스테레에서 대서양과 만났을 때, 안나푸르나 오름길에서 마차푸차레의 봉우리를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처음 경험하는 문화적 충격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자주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15년 전 우리나라의 레포츠와 관광 그리고 여행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은 아무래도 걷기여행 문화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한 개인이 성찰과 치유를 위해 떠났던 산티아고 순례길. 결과로 '제주 올레길'이 탄생했다, 지리산 일대의 환경과 생명을 위한 신념이 발길로 모여 '지리산 둘레길'을, 무자비한 개발권력 앞에 자연을 보호하려는 항거의 몸짓이 '여강길'을, 산의 성품 닮은 한 중년 남자가 이야기로 삶을 전하는 소설가와 함께 '강릉 바우길'을 열었다.

 더욱이 올레(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이라는 제주 토속 방언)권 제주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 큐슈(수출1호), 미야기 지방(수출3호)을 넘어 동북아시아 몽골까지 길을 여는데는 불과 10여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몽골올레는 '올레'라는 걷기길 고유 브랜드를 세계에 수출한 두 번째 걷때길)

 필자는 지난 6월 15일부터 20일까지 몽골올레코스를 답사하고 돌아왔다. 우리나라 면적의 15배가 넘는 광활한 땅 위에 한 눈에 넣을 수 없는 지평선이 눈을 시리게 하는 몽골 초원이 있다. 그 위에 2017년 한국인이 그린 걷기여행길 발자취가 생기기 시작했다.  2021년 3개 코스 40여km가 완성되어 올해 8월 24일부터 3일간 이 길 위에서 세계인이 모여 걷기축제를 연다. '2023 몽골올레축제'이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몽골에 올레길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익어갈 무렵 한국에서 간 제주올레의 관계자들이 처음 울란바토르 시장과 공무원들을 만나 '걷기여행을 위한 길을 만들자'는 제안에 몽골에는 차가 다니는 길과 말이 다니는 길이 있고 그 외에는 넓은 초원 평지인데 사람이 다니는 길을 따로 만들자는 말에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심어린 노력으로 기마민족 몽골에 걷기 동호회가 생길 정도의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번 답사기간 몽골올레의 3개의 전 코스를 걸으며 만난 몽골올레센터 책임자와 자원 봉사자, 말 고삐를 잡아준 마부, 유창한 한국어 구사로 나를 놀라게 한 몽골 청년, 걷는 길이 힘들지 않게 배려해준 올레길동무들를 보며 짧은 기간동안 급변하는 몽골의 관광 수용태세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걷기길을 관광자원화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체험, 생태, 자연적인 삶의 모습을 매력물로 드러내며 관광산업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열어가고 있었다.

 2011경에 제주에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제주올레 창시자인 서명숙 이사장을 만난 필자는 원주의 걷기 길을 꿈꾸게 되었고, 일찌감치 걷기문화를 만들어가던 선배들과 걷기 좋아하는 많은 동호인과 함께 원주에 걷기 길을 시작했다. 민관 협력의 결과로 원주굽이길(400km),치악산 둘레길(140km)을 합해 540km라는 단일 지방자치 단체 중에는 가장 긴 걷기 여행길이 갖춰져 있다.

 세계인이 사랑하며 찾는 제주 올레길 축제, 생태와 자연을 만끽하는 지리산 둘레길 축제, 아름다운 서해안 내포를 중심으로 여는 내포 숲길 축제, 바로 이웃하고 있는 여주의 '여강길 축제'등 걷기 길을 향유하고 즐기고 활용하는 걷기 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세계 곳곳, 아시아 전 지역,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걷기길 위에서 걷기 여행이 펼쳐지고 관광자원으로 활용되어 관광산업의 주요한 경제 요소가 된 걷기 여행길이다. 

 2022년 9월 그리스 스키아토스에서 열린 월드트레일즈컨퍼런스, 같은 해 12월에 열린 타이완 아시아걷기축제, 2023년 6월초에 일본 구라요시 아시아 걷기축제 등 세계인들이 오고 걷기관광객이 세계로 몰려나가는 걷기여행문화가 확산 일로에 있다. 세계 어느 길에도 뒤지지 않는 인프라를 갖춘 '원주굽이길','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천리도보여행길'에 세계 각처로부터 걷기여행객들을 불러 모을 정책과 집단지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칭기스칸 공항에서 새벽 항공편에 몸을 실은 필자는 밀려오는 피곤 속에서도 내내 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최종남 (사)한국걷는길연합 이사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