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군 사령부에서 현 원주시보건소 위치에 군인극장과 함께 건립한 군인백화점. (사진: 원주역사박물관)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미국의 유명한 도박·휴양도시 라스베이거스(Las Vegas)처럼 새롭게 건설된 신흥도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도시에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건축물이 공존하고 있다. 도시가 발전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도시에 남아 있는 건물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건축은 도시의 옷이다. 고대의 건축물이 잘 남아 있는 유럽의 역사도시나 개발도상국을 제외하고 현대 건축물과 함께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과거 건축물은 근대기에 만들어진 건물들이다. 그러나 원주에서 근대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원주에도 근대기는 분명히 있었으나 외형상으로 볼 수 있는 도시 모습에서 근대 원주를 만나기 어렵다. 한국전쟁의 전환점으로 불릴 만큼 격렬한 전쟁으로 일제 강점기 이후 근대기에 세워진 원주의 건축물은 대부분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선화당과 학성관 같은 규모가 큰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채워진 일제 강점기에 촬영한 원주의 시가 전경 사진에서 조선시대 원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기 원주의 도시 모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전쟁이 멈추고,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정부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국민이 발 벗고 나섰다. 다른 도시보다 전쟁의 피해가 컸던 원주였지만 그러나 재건 속도는 빨랐다. 1954년 원주 가현동에 사령부 건물을 새로 짓고 이전한 제1야전군사령부의 도움 때문이다. 파괴된 도로를 복구하고 공공시설과 피난민이 생활할 수 있는 수용소를 만드는 일들을 군에서 주도하였다. 군인을 위하여 군인백화점과 군인극장도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세웠다. 원주 도심, 현재 원주시 보건소 위치에 세워진 군인극장과 군인백화점은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었다.

1954년 건립된 강원도 최초의 사학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은 중앙 출입부를 중심으로 좌우로 비행기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다. 같은 해 신축한 제1야전군사령부 청사도 같은 모습이다. 두 건물 모두 화강석을 네모나게 다듬어 벽을 쌓았다. 재료와 외형이 닮은 건물이 같은 해에 지어져 각각 다른 용도로 쓰였다. 전쟁이 멈춘 직후 어려운 시기에 사립학교를 세우는 일도 군의 도움이 있었다.

원주는 피난민의 도시이다. 1954년 강원도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쟁이 멈추고 강원도내에는 10개소의 피난민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그중 9개소가 원주에 설치되었고, 전체 35,668명의 수용인원 중 95%가 넘는 33,975명이 원주에 수용되었다. 이처럼 피난민 수용소가 한 도시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것은 전쟁으로 원주에 임시로 설치된 강원도청의 역할 때문으로 보인다. 강원감영에 설치된 피난 도정의 행정력이 여러 시군에 미칠 수 없으니 임시 도청이 있는 원주에 수용소를 설치한 것이다. 

더불어 필자는 원주에 피난민이 많이 정착한 이유를 한반도 중심부의 교통 요충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로 확대 개설된 충주에서 원산을 잇는 도로는 한반도 중부지역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다. 충주∼원산 도로가 지나는 곳 중 가장 규모가 큰 도시가 원주였고 중앙로 일대는 번화가였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원산과 주변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영서남부 지역과 충청북부, 경상북부 지역을 오갈 때 원주를 지나쳤을 것이다. 당연히 38선 북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원주는 다른 도시보다 익숙하고 정착하기 좋은 도시로 알려졌을 것이다.

전쟁 후 원주의 재건과 기념할 만한 근대 건축물을 남긴 사람들은 38선 북쪽에서 내려와 원주에 정착한 사람들도 많았다. 아카데미 극장을 비롯하여 문화극장, 시공관, 원주극장 등 모두 네 개의 극장을 운영했던 분도 월남민이다. 당시 극장은 원주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최대의 문화공간이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고 미디어가 발달하기 이전 영화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통로였다. 영화를 통하여 미국과 유럽인을 만나고 그들이 사는 도시를 간접 경험할 수 있으니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전후 도시 재건에 지친 원주시민이 희망을 꿈꾸고 새로운 힘을 얻는 공간이었다.   

원주 최초의 목욕탕인 금성목욕탕을 운영한 사람도 38선 북쪽 평양에서 온 월남민이다. 평양에서 목장과 목욕탕을 운영했던 부호가 전 재산을 두고 월남하여 빈손으로 땀 흘려 세운 목욕탕이다. 평원로에 있는 금성목욕탕은 남녀가 구분하여 출입하는 대중탕 외에 2층에는 남녀 구분 없이 가족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가족탕을 운영했다. 

금성목욕탕은 사업을 확장하여 건물을 증축하고 금성호텔도 함께 운영했다. 원주 최초의 호텔이다. 당시로는 모던한 소재인 타일로 외벽을 치장한 호텔과 목욕탕 건물은 지금은 페인트로 덧칠해져 원래 모습을 알아 볼 수 없는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나 건물 뒤에 우뚝 솟은 붉은 벽돌로 쌓은 굴뚝에서 전후 재건에 힘쓰던 원주 시민들이 피곤함을 풀어주었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필자는 2018년 근대역사문화공간재생활성화 사업 공모신청서를 제출할 때 원주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정의, 평화, 협동의 도시'라고 정의하고 여러 심사위원에게 설명한 바 있다. 몇몇의 편의와 이익보다 따듯한 이야기를 간직한 건물을 품고 있는 도시여야 명품도시가 될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