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도 더 전에 '칠봉'을 찾았을 때, 서원 터 앞쪽에 우뚝 솟은 바위를 보고 칠봉이라 했다는 말을 듣고 몇 번이고 세어보았지만, 일곱 개의 봉우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수십 년 흘러가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찾았지만, 나는 여전히 "왜! 칠봉이지?"를 되뇌곤 했다.

 원주의 조선시대 최초 서원(書院)인 칠봉서원(七峯書院)은 건립 당시(1612년)에는 서당만 축조하여 생도들을 교육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1624년(인조 2) 사우를 건립하여 고려말 조선 초의 절의의 선비인 운곡 원천석을 봉안하면서 운곡서원(耘谷書院)이라고 불렀다. 

 1638년(인조 16)에 정종영(鄭宗榮)과 한백겸(韓百謙)을 봉안하였고, 1663년(현종 4) 진사(進士) 한용명(韓用明) 등이 4월 사액상소(賜額上疏)를 올렸으나 보류되었다. 그해 말 좌상 李端夏(이단하)가 재차 청액하여 같은 해 12월 16일 국왕의 특명으로 '칠봉(七峯)'으로 사액 되었다.

 사액치제문(賜額致祭文)을 별지에 첨부하여 예조정랑(禮曹正랑) 송정렴(宋挺濂)을 칠봉서원에 파견하여 현판을 걸고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후 1703년 관란(觀瀾) 원호(元昊)를 봉안하여 운영되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 훼철 서원이 되었으나 1910년경까지 서원 건물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위 기록은 왕조실록이나 원주역사 기록에 남아 전해지는 내용이지만 여전히 왜! '칠봉(七峯)'이라 이름 지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난해 일부 복원된 칠봉서원 앞쪽 일리천을 안고 나란히 서 있는 바위를 우리는 그냥 '칠봉'이라 부른다. 필자가 80년대 초 처음 칠봉이라 부르는 산 앞에서 몇 번이고 세어보았지만, 늘 헷갈릴 뿐 7개로 단정하지 못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1928년에 출간된 『생육신관란 원호집(生六臣 觀瀾元昊集)』에 관란이 봉안된 서원도(書院圖)가 남아있다. 사진 속 그림에는 6개의 봉우리와 함께 운곡서원이 있는 뒷산을 크게 봉우리로 그려 넣어 화제를 '칠봉도'라 했다.

 또,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이 1635년경 운곡서원(찾을 당시에는 운곡서원이었음)을 찾아 지은 '산붕암(山棚巖)'이란 시 3행(行)에 "붕암시속명(棚巖是俗名)-붕암이란 속인들이 붙인 이름일 뿐" 다시 5행에서 "육봉류삭성(六峯類削成)-깎아서 만든 듯한 여섯 봉우리"라 쓰면서 "언뜻 보면 사관의 붓을 꽂아 놓은 듯… [중략] 이곳에 운곡 선생의 사당이 있어 향기로운 그 이름 항상 제향 모시네"라고 하였다. 

 이처럼 '칠봉'이란 사액 이후에 그린 그림에서도 여섯 봉우리였고, 사액 이전에도 육봉(六峯)이라 한 걸 보면 확실히 봉우리는 여섯 개다. 당시 예조(禮曹)의 관리가 현장에 와 관계자들을 만나고 택당의 시문도 보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현종에게 아뢸 때 곧게 우뚝 솟은 산붕암(山棚巖, 산대 바위라고도 함)의 여섯 봉우리에 바로 앞에 세워진 운곡서원에 모셔진 원천석의 절개를 더해 '칠봉(七峯)'이라 사액하는 것을 좋다고 보고하고 그리하라 해서 칠봉으로 사액했을 것이다.

 사액 결정의 내력이 담긴 기록을 찾아 밝힐 수 있다면 좋겠지만 '칠봉'이라 사액한 이유를 필자 나름대로 합리적 추론이다. 운곡의 절의와 6개 봉우리가 주는 위세를 함께 보아야 제대로 칠봉의 의미를 새길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 칠봉서원이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데는 서원은 일반적으로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선현의 연고지거나, 풍광이 뛰어나고 적막한, 비교적 읍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나 향촌에 자리를 잡았다. 또, 고려말(高麗末) 이래의 폐사를 이용한 곳이 많았다.

 이는 문화의 교체에 따른 공간점유의 계승이란 측면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사찰 터 역시 대개 경관이 뛰어난 곳이 많았기 때문에 서원이 들어서기 좋은 여건이 되었을 것이다. 원주에는 도천서원이 흥법사지 터에, 도동서원은 법천사지 터에 서원을 세웠다. 칠봉서원의 입지는 읍에서 비교적 많이 떨어지고 풍광이 나름 좋았던 지금의 호저면 산현리로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동진 전 원주역사박물관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