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전쟁처럼 치러낸 초여름 들녘의 농심이 심상치 않다. 수입으로 인하여 야기된 초과생산쌀의 시장격리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양곡관리법안을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올가을 쌀값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쌀 재배면적을 줄여서 쌀값을 보장받자는 현수막을 관공서 앞에 버젓이 내걸어 빈축을 사고, 국회는 한술 더 떠 현직 농협 중앙회장의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농협법 개정안을 해당 상임위에서 통과시켜 불난 농심에 기름을 붓고 있는 형국이다.

 식용쌀 재배 농지에 가루쌀의 재배를 권장하고 집단 생산단지를 조성하려는 정책은 궁여지책이긴 하나 그나마 수입 밀가루를 대체하고 쌀 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유효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이에 덧붙여 가공용 쌀 확대 정책으로 검토해볼 만한 방안이 있다. 이른바 "주미(酒米)" 혹은 "주조호적미(酒造好適米)"라고 하는 술 제조에 적합한 쌀의 생산이다.

 현재는 식용쌀을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주조에 더 적합한 쌀을 지역에 맞게 개발·재배하여 전통주 제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일찍부터 각 지역을 대표하는 주조호적미를 개발·생산하여 사케주조에 사용해 왔고 국내에서는 횡성 소재 G사에서 "설갱미"라는 주조 적합쌀을 농가와 계약재배 생산·수매하여 일부 제품에 사용하고 있다.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주조적합 쌀은 1923년에 개발된 야마다니시키(山田錦)라는 품종이다. 주질이 안정되어 있으며, 숙성에 따른 맛과 향도 좋아지는 것이 장점이긴 하나 만생종이라 따뜻한 지역에서 재배가 용이하다. 일조량이 적고 추운 지방에서 재배하기에 적합한 고햐쿠만고쿠(五百萬穀)라는 품종도 있다.

 추운 지역인 니가타현 주조용 쌀로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이렇게 사케 주조에 사용되는 주조호적미는 전국적으로 100여개에 이른다. 한국에선 가공용 쌀이 일반 쌀보다 더 저렴하지만 일본에선 사케용 쌀이 더 비싸다. 식용 쌀들에 비해 고햐쿠만고쿠는 약 30%, 야마다니시끼는 약 2배 정도 더 고가지만 이들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 양조장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렇게 비싸게 사들인 벼를 도정해서 술을 빚는데, 30%, 50% 심지어는 75%를 깎아내고 남은 25%의 쌀만으로 술을 만들기도 한다. 최고의 쌀로 부가가치를 한껏 높인 고급술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고가(高價) 판매전략을 통해 수출액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2022년 사케의 미국 수출액은 109억 엔(약 1,072억 원)으로 10년 전보다 3배나 늘어났고 미국에서 일본술 사케의 인기로 현지에 대규모 주조공장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양조 적성 쌀 품종에 대한 연구 개발·보급 사업이 10여년전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시도된 적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만족할만한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100억 이상의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는 횡성 G사의 2022년 반기보고서에 의하면 원재료 중 쌀의 kg당 원가는 수입쌀이 375원, 국산쌀 정부미가 1,048원 설갱미가 2,531원이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원가가 설갱미의 15% 수준이며, 가격경쟁력이 가장 큰 수입쌀의 유혹을 물리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내수와 달리 수출시장에서는 단지 가격경쟁력만으로 지속성장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한때 한류와 함께 막걸리 열풍으로 증가하던 막걸리 수출액이 최근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역특산주라 하여 농민이나 농업경영단체가 직접 재배한 쌀이나 혹은 지역의 대표적인 쌀을 사용하여 술을 빚거나 직접 누룩을 개발하고 토종 효모를 사용하여 제조하는 양조장이 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바람직하고 다행스런 일이다.

 와인에 진심인 사람들이 포도의 품종을 이야기하면서 음용하듯이 전통주를 마실 때에도 쌀 품종을 알고 이야기하면서 마실 수 있도록 양조장의 인식 전환과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 전환이 필요하다. 주조에 적합한 지역 쌀의 개발과 생산은 쌀을 지켜내고 전통주의 품격을 높이는 힘찬 걸음이 될 것이다.

이규옥 신림면 용암1리 농민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