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작년, 국내를 부유하듯 떠돌다 대도시에 안착했다. 놀러 갈 만한 곳이 손가락 열 개는 거뜬히 넘어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하는 도시. 이 넓은 곳에서 나 한 명쯤 비빌 곳이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무작정 이사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도시에서의 삶을 꿈꿔왔다. 어디에서 살든 곧 떠날 사람처럼 굴었더니 결국 여기 와있었다. 그래서 그 시간이 꿈처럼 달콤하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인생이 달기만 하겠냐고 대답하겠다.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커리어 때문이었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열정, 더 많은 기회를 원했고 운 좋게 내게도 주어졌을 때 이 모든 것을 쥐고 달려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뛰기도 전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물이 났다. 화가 나고 괴로웠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잠이 들었고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미친 척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포기하다 나 자신을 포기하게 되었을 때는 퇴사를 결심했다. 뭐든 부풀면 가라앉는 게 당연한 이치라지만 너무 빠르게 꺼졌다. 5년 같았던 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이 도시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저것 버리고 던지고 포기하다 보니 이제 이곳을 떠나는 것도 아쉽지 않았고, 어디를 가나 이런 삶이라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들어가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도시로부터 똑 떨어져 산속에 고립되고 싶다고 생각한 지가 벌써 작년 여름. 다음 정착지는 그때부터 알게 모르게 정해진 셈이다. 늦잠도 자고 드라마도 보고 산책도 하며 하루하루 놈팡이처럼 살다가 9월부터 친구들과 주말농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산속에 자리 잡은 텃밭으로 출근하며 6평의 작은 땅에서 작물들을 키웠다. 살면서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은 힘든 것보다 즐겁기만 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당연히 비슷한 일을 구해 오늘 벌어 내일 사는 인생이 반복될 거라 짐작했으나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의 중요성을 느꼈고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눈으로 보았다.

 직접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길지 않은 시간 끝에 농작물을 수확해내는 과정은 놀라웠다. 앞으로의 삶에 있어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했던 가을 방학은 주말농장으로 인해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결실의 계절이 가을인 것처럼 내 결심도 그제야 무르익기 시작했다.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주변을 떠돌며 바람처럼 유랑했다. 이런 삶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무언가 부족하다 느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지 오래였지만 다음 스탭이 오랜 시간 미정이었기 때문이다. 결심해야 했고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은 껍데기로 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 원주로 왔다. 돌고 돌아 소망했던 삶을 살기 위해서.

 꽝꽝 얼어있던 바닥을 조심조심 걸으며 마을을 거닐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반팔을 입어도 춥지 않은 계절이 왔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평화롭다. 빛이 오는 곳으로 가면 집 앞의 나무들이 보인다. 생명의 기운을 받아 한없이 푸르고 반짝일 일만 남은 물결들이 사라락 사라락 바람을 따라 작게 움직인다.

 그런 풍경을 보며 우리 손으로 땅을 일구고 밭을 만들고 작물을 심는다. 자연과 가까이에 살겠다는 결심을 이제야 이룬 것이다. 무슨 대단한 꿈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닌 고요한 풍경을 마주하며 모두와 공존하며 지내는 것, 단지 그뿐이다.

조유진 2030여성공동체 '범고래단' 회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