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 전쟁기념관 뜰에 세워진 형제의 상. 치악고개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모든 전쟁터는 승리를 위해서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이지만 한국전쟁은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쟁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참혹했다. 전쟁사가 새뮤얼 마셜(S. L. A. Marshall)도 한국전쟁을 "금세기에 일어난 소규모 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련의 지원과 직접 전쟁에 참전한 중국과 북한에 맞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한국전쟁은 우리민족간의 내전을 넘어 국제전이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1914∼1919)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 이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전쟁의 원인도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냉전시기에 벌어진 이념전쟁이었다. "한국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이 땅 혹은 세계의 어딘가에 한국이 없으면 안 되었다"는 1952년 당시 미8군 사령관이자 유엔군 사령관 밴 플리트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양 진영의 싸움에 전쟁터가 된 한반도는 남과 북의 수많은 동포가 죽고 다쳐 금수강산을 피로 물들였다.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전범국 일본은 전쟁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불과 5년 만에 7천 3백여 명이 넘는 군인을 보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일본인이 다시 한국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전쟁 영웅 맥아더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의 전쟁자원을 십분 활용했다. 특히 한국의 지리에 밝은 일본인을 최대한 동원했다. 그런 까닭에 인천상륙작전의 주력이 무장 해제되었던 일본군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군의 병참기지였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이 되는 기반을 마련한 일본에게 한국전쟁은 축복이자 기회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한국은 5년 만에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침략자 일본에게 준엄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을 시기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적이었던 일본이 미군과 함께 다시 한반도에 진출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준 우방으로 변했으니 역사의 모순이다. 지금까지 일본이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도 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철천지원수 일본은 점차 잊혀져 갔고 '무찌르자 일본군, 때려잡자 히로히토'를 외쳐야할 시기에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이라는 구호가 우리의 이성과 정치,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한국 전쟁은 수많은 가족이 흩어지고 심지어 형과 아우가 총을 들고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게 했다. 70여 년 전 치악고개에서 적으로 만난 형과 아우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가리파재로 부르기도 하는 치악고개는 원주의 남쪽 관문이다. 치악산맥의 남쪽 끝자락과 백운산의 북쪽 끝자락이 만나는 치악고개는 험한 준령이다. 조선시대 때는 남쪽지역을 오가는 보부상들이 지나는 주요 도로였는데 호랑이와 도적떼의 출몰이 많은 위험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이 길을 이용하는 보부상단은 계를 조직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토지를 매입하여 서낭당을 짓고 무사통과를 기원하기도 했다. 치악고개 남쪽 기슭에는 보부상단이 지은 서낭당의 흔적이 199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치악고개에서 전투중 형과 아우가 만난 사실은 6.25전쟁수기 공모에 응모한 수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두 형제는 북한의 평산군 신암면이 고향인데 형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북에 가족을 두고 월남하였다. 월남한 형 박규철은 한국전쟁 때 한국군 제8사단 제16연대 소속 소위로 참전하였고, 북에 남았던 동생 박용철은 조선인민군 제8사단 제83연대 소속 하전사로 참전하게 된다. 치악고개에서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던 국군 대위 형 박규철은 후미의 인민군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때 뒤돌아보는 인민군의 얼굴이 낮 익어 총을 거두고 살펴보니 북한에 두고 온 동생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던 형제가 서로 만나 얼싸안는 장면은 이념을 초월한 평화의 상징이다. 수기가 발표되고 치악고개에서 만난 형제의 이야기는 널리 회자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국방부에서는 이 수기를 바탕으로 1994년 개관한 용산의 전쟁기념과 뜰에 대형 조형물을 세웠다. 조형물은 반구형의 기단 위에 어깨에 총을 멘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얼싸안는 청동 조각상이다.   

2004년 강제규 감독이 제작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도 원주 치악고개 전투를 배경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11,746,135명의 관객이 보았던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인데, 장동건과 원빈이  형과 동생으로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미남 배우의 역할도 컸지만 전쟁에서 만난 두 형제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형제의 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6년 무렵이다. 제천에 살고 있다는 노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형제의 상과 치악고개 전투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치악고개에 평화공원을 조성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원주시로 지리를 옮기고 이듬해이니 원주의 사정을 잘 모르는 때였다. 또한 형제의 상이 1994년에 건립되었으니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다. 지금이라도 치악고개에 평화공원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