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시민 4년 차, 요즘 최대 고민은 '원주에 오래 살 수 있을까?'이다. 친구들은 내게 "원주에 얼마나 머물 예정이야?"라고 묻곤 한다. 취업 기회가 현저히 적은 지방에 오래 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일테다. 처음엔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2022년 여름에 처음 아카데미극장을 알게 되었다. 원주옥상영화제 시민 프로그래머를 할 때다. 영화제 기간에 그곳에서 밤샘 상영을 한다고 했다. 한 분이 거기 가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없다고 하자 그 사람은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가보시면 반할 겁니다." 나는 오래된 극장의 존재보다 그 장소를 이야기할 때 원주 사람들 눈에 비치는 애정이 더 인상깊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카데미극장을 봤을 때, 가보면 반할 거라는 말에 동의했다. 나는 극장 안에 흐르는 진짜 레트로 감성에 연신 감탄했다. 작은 구멍으로 표를 건네받는 매표소가 있었고, 푯말에는 '연소자 관람가'라는 손글씨가 쓰여있었다. 공기에서 옛날 냄새가 났다.

 어릴 적 뛰놀던 할머니 집이 떠오르는, 말 그대로 추억의 냄새다. 건물 뒤편에는 신기한 구조로 된 살림집이 있는데 가구와 작은 소품까지 시간이 멈춘 듯 보존되어있었다. 그 안에 있으면 1960년대와 지금의 시간이 공명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아카데미극장에서 밤새 영화를 보고, 원주 곳곳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나는 점점 원주에 정이 들어버렸다.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뭉친 것도 멋있었다. 사람들이 힘을 모아 뭔가를 지켜내고 기억하는 도시라면, '나도 여기 오래 머물면서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어느날, SNS를 통해 흉한 현수막으로 가려진 아카데미극장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희망을 품은 게 잘못이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좀 원주가 좋아진다 싶었는데 문화사업들이 줄줄이 잘려나가는 통에 정신이 혼미하다. 원주시장은 원주에 애정이 있긴 한가? 토박이가 아닌 나도 원주에게 아카데미극장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알겠는데, 왜 모르는 걸까.

 어째서 잘 진행되던 보존 사업을 뒤엎는 것인지 제대로 된 근거도 설명도 없다. 게다가 '국내 최장수 단관극장'을 부수고 만든다는 것이 고작 '주차장과 야외 공연장'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계획이다.

 인구 대비 문화시설 수가 강원도 내 최하위 꼴인 원주의 관광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자연과 예술의 도시'라는 문구가 보인다. 당최 어떤 자신감으로 적은 것인지 의문이다. '불통과 주차장의 도시'가 더 잘 어울린다. 혁신도시, 기업도시가 생겨서 건물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지어져도 사람이 머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사람들이 이 도시에 오래 머물려면 주차장이 아니라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원주는 청년이 정착하여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도시일까? 사람들의 발길로 빛나던 아카데미극장이 외롭게 격리된 모습을 보며 고민이 더 깊어진다. 나는 원주가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란다. 진정 자연과 예술을 자랑으로 삼는 도시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원주에 오래 살 수 있기를,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백희림 무실동 주민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