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1937년생 소띠로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87세이시다. 문막읍 건등리 섬강변에서 태어나시고 19살 소녀시절 강 건너 동갑내기 총각에게 시집을 오셨다. 넉넉하지 않은 집 맏아들에게 시집와 5남 1녀를 낳고 키우시느라 손발이 닳고 허리가 굽도록 평생 농사일로 고생하며 사셨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손자, 손녀를 보시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실 시기가 왔다. 

 그런데 몇 년 전 불쑥 엄마에게 불청객이 찾아 왔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알려진 치매다. 와이프가 "어머님이 좀 이상해요. 치매 끼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마다 역정을 내며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치곤 했다.

 그러다 점점 기억이 흐려지시고 같은 물음을 되풀이할 때쯤에야 치매 검사를 받고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항상 똑 부러지시고 흐트러짐이 없으셨던 분인데,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치료는 불가능하고 진행을 더디게 하는 약물치료가 제일 나은 방법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현재 지속적으로 약을 드시고 있다.

 그러나 약물치료도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뿐 시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기억의 순간은 점점 짧아지고 피해망상은 더해 갔다 돈과 통장을 숨기기 시작했고 숨긴 것을 기억하지 못한 채 아버지에게 훔쳐 간 돈과 통장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울부짖는 망상이 시작되었다. 

 젊어서 호랑이 같던 아버지도 반복되는 엄마의 윽박지름에 어찌할 바 모르고 답답한 마음만 자식들에게 호소한다. 가족회의를 통해 엄마를 보호센타에 주간 보호를 맡기고 낮에 만이라도 두 분을 격리해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 중이다.

 2021년 국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고 치매 환자 수는 88만6천173명으로 추정되며 치매 유병률은 10.33%에 달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체 치매 환자 중 80세 이상 치매 비중이 60%를 상회한다는 것이다. 

 100세의 삶이 보편화 되는 현실에서 긴 시간 치매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치매 환자의 동거인이 대부분 노부부이기 때문에 갑자기 찾아온 치매라는 불청객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하여 대처가 미숙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되기 쉽다.

 치매환자에 대한 많은 지원사업이 있지만, 좀 더 촘촘한 지원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치매 환자는 제일 가까운 시간의 기억부터 잊는다고 한다. 엄마의 기억이 가족에게서 멀어질까 두렵다. 아랫녘에서부터 올라오는 반가운 벚꽃 소식처럼 우리 엄마에게도 화창한 봄날이 다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