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3월 22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지광국사현묘탑 해체식.

제 길을 벗어난 성직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구도의 길을 다시 걷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 식민정부에 의하여 타지에서 떠도는 수많은 이 땅의 석조문화재들이 광복 78년이 되는 지금까지 한 점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1911년 9월 일본인 골동상 모리무라 타로(森村太郞)에 의하여 법천사를 떠나게 된 지광국사현묘탑의 운명은 기구하다. 지광국사탑은 외세의 침략과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함께 짝을 이루며 세워진 지광국사현묘탑비와 헤어져 100년이 넘도록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산(離散)의 세월을 보냈고, 한국전쟁 때는 타향에서 인간의 전쟁에 대신 포탄을 맞아 1만2천여 조각으로 부서졌다. 

2016년 3월 22일 오후 2시, 지광국사탑이 있던 경복궁(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지광국사탑 해체 보고식이 열렸다. 탑이 서울로 옮겨지고 105년, 한국전쟁 때 포탄에 맞아 부서진 탑을 수리한 1957년 이후 57년 만에 다시 대대적인 수리를 위해 대전의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기는 큰 이벤트이니 문화계의 관심은 컸다. 수리를 맡은 문화재청장과 지금까지 현묘탑을 관리해 온 국립중앙박물관장 그리고 문화재위원들과 내로라하는 문화재계의 원로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필자도 해체식에 참석하였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미관말직인 필자는 초대장도 사적으로 연락받은 일도 없었다.

2000년 원주시립박물관을 개관할 때부터 도움을 받아 친분이 있던 문화재청장과 국립중앙박물관장을 국립고궁박물관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지광국사탑에 대한 원주시민의 관심을 전해주었다. 해체식에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수리 후 현묘탑이 어디에서 전시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이 겪은 아픔을 온전하게 치유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인사말을 했다. 해체후 탑의 이전 장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해체식이 열리기 전 당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원래자리로 돌려 달라는 원론적인 주장 보다는 정교한 논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당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과거 언론에 보도된 원주 문화재환수운동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원주 문화재환수운동은 1994년 10월 원주문화원에서 논의가 시작되어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고 도농통합으로 원주군과 원주시가 통합된 1995년 본격화되었다. 1995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공문을 보냈고, 9월에는 원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원주에서 보낸 문화재환수 공문에 대하여 관리 시설과 전문 인력이 없어 돌려보낼 수 없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왔다. 이후 몇 차례 공문을 주고받았으나 상황은 진전이 없었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입장도 변화가 없었다. 이후 2007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이계진 의원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에게 촉구하여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 재현품을 제작하게 된다. 원공국사승묘탑 재현품 제작을 이끌어낸 원주 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는 그동안의 활동을 마치게 된다. 

지광국사현묘탑의 해체 이전에 대하여 서울의 관심은 컸지만 정작 원주의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민과 과거 환수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조차 지광국사탑이 해체되어 대전으로 이전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사람들이 많이 찾고 전문가들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국립중앙박물관 의견을 그대로 말하는 식자들도 적지 않았다. 해체식을 마치고 원주로 돌아온 필자는 그동안 머릿속에 담고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거부할 수 없는 논리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중단된 문화재환수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환수 여론을 만들어야했다.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몇몇 분을 만나 지광국사탑 해체식 분위기를 전하고 '지광국사탑 제자리 찾기 운동'을 시작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 결과 2016년 4월 7일 원주문화원이 주도하여 36개 기관·단체가 참여한 '원주문화재환수 범시민운동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5월 23일에는 김상환 씨가 깃발을 든 '지광국사탑 본래자리 이전 시민추진위원회'가 발족식을 가졌다.  

1995년부터 역대 문화원장들과 문화재환수운동을 함께해 온 필자에게 지광국사탑의 대전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이전 수리 결정은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였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속 기관인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병든 문화재를 치료하는 종합병원인데 보존처리 기간이 5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정하고 있었다. 지광국사탑과 필자에게 5년은 운명의 시간이다. 공직자인 필자 대신 여론을 형성해 줄 북과 나팔이 되길 자처한 고마운 시민들이 나서주었고, 정교한 논리와 문화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할 감성적인 작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