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탑비와 함께 세트로 세워져 826년 동안 제자리를 지키던 지광국사현묘탑이 법천사 동쪽 산기슭 승탑원에서 사라졌다. 고려의 문종 임금과 해린 스님의 제자들이 스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든 승탑이 제자리에서 사라진 이유는 탑이 지닌 아름다움 때문이다. 다른 승탑과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가진 현묘탑은 나라 안팎으로 소문이 나서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가인박명(佳人薄命), 아름다운 사람은 불행하다는 인간사의 속설은 현묘탑도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이었다. 

지광국사현묘탑에 찾아온 첫 번째 불행은 임진왜란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울로 가는 길목인 원주는 왜적의 침략으로 법천사의 많은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사라졌다. 신라 때 창건되어 천년을 이어온 절터에는 하나둘 사람이 살면서 큰 마을을 이루었고 절터는 사유지가 되었고 현묘탑은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었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하면서 두 번째 불행이 찾아왔다. 후지무라 도쿠이치(藤村德一)라는 일본인은 '현묘탑 강탈시말'이라는 글에서 현묘탑이 제자리를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타향살이하는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911년 9월 일본인 골동품 상인 모리무라 타로(森村太郞)는 당시 지광국사현묘탑이 있던 땅 주인 정주섭을 회유하여 푼돈을 주고 탑을 해체하여 서울로 가져갔다. 현묘탑을 서울로 가져온 모리무라 타로는 일본인 실업가 와다 쓰네이치(和田常市)에게 팔아넘긴다. 와다는 이 탑을 명동 무라카미 병원(村上病院) 앞에 두었다가 서울 남창동에 있는 그의 집 정원으로 옮겼다. 얼마 후 1912년 5월 31일 와다는 일본 오사카(大阪)에 사는 남작 후지타 헤이타로(藤田平太郞)에게 31,500원이라는 거액에 현묘탑을 팔아넘긴다. 일제 강점기 쌀값과 노동자의 인건비를 기준으로 보면 현묘탑의 거래 가격은 지금 시세로 대략 47억 원 정도가 된다. 물론 정식 거래가 아니라 불법으로 반출한 문화재를 몰래 거래한 것이니 제값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으로 팔려간 현묘탑은 반년이 채 못 되어 다시 돌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묘탑을 일본 오사카에서 우리나라로 되찾아 온 것은 당시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였다. 총독 데라우치는 "폐사지는 원래 국유지로 봐야하고 그 폐사지에 있는 탑 역시 국유물"이라는 논리로 골동상 모리와 오사카의 후지타에게 팔아넘긴 실업가 와다를 잡아 가두고 죄를 물었다. 이에 놀란 와다는 일본의 후지타에게 팔았던 탑을 되사서 총독부에 기증하는데, 이때가 1912년 12월 6일 무렵이다. 총독 데라우치는 일본의 조선 통치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였을 터이고, 자신의 통치권 내에 있던 국보급 문화재를 허가 없이 일본으로 팔아넘긴 것을 괘씸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묘탑은 고향 원주 법천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서울에서 이곳저곳 떠돌며 2∼3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자취를 감추었던 현묘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행사장인 경복궁이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데라우치 총독이 한일합방 시정 5주년을 기념하여 자신의 총독정치가 조선왕조 때보다 국민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하여 개최한 박람회였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행사장의 중심부인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박물관 앞 정원 중앙에 현묘탑이 끌려온 것이다. 탑은 한동안 그 자리에 있다가 1923년 이후 경회루 동편의 사정전과 아미산 사이로 옮겨졌다.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열린 조선물산공진회를 빛내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석조 문화재들이 행사장으로 옮겨졌는데, 원주의 거돈사지와 흥법사지, 영천사에 있던 5기의 승탑들도 이때 제자리를 떠나는 수난을 당하였다.

일본에 의하여 두 번의 수난을 겪은 현묘탑의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현묘탑의 세 번째 불행은 한국전쟁 때 다시 찾아왔다. 부산까지 밀렸던 한국군은 연합군의 인천 상륙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되찾고 중앙청에 다시 태극기를 올렸다. 그러나 당시 경기고등학교(현 정독도서관)에는 서울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경봉궁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북한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묘탑이 북한군이 쏜 포탄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포탄에 맞아 부서진 현묘탑은 전쟁이 끝난 한참 뒤까지 수리되지 못하고 현묘탑 주변에는 1만2천여 조각으로 부서진 파편이 널려 있었다. 

부서진 현묘탑이 다시 제 모습을 찾은 것은 1957년 응오딘디엠(고딘디엠) 월남 대통령 방문이 계기가 되었다. 응오딘디엠과 이승만 양국 대통령이 경회루를 산책할 때 부서진 현묘탑을 보게 되었고, 외국의 대통령에게 자기 나라 문화재 관리도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게 된 이승만이 서둘러 수리를 지시하게 된다. 시멘트로 성형 수술을 마친 현묘탑은 경복궁에 있었던 옛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고궁박물관) 뜰 야외 전시장에서 100여 년 동안 타향살이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