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광국사현묘탑비 윗 부분에 새겨진 도솔천과 제목 글(두전頭篆)과 봉황.

지광국사 해린 스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든 승탑, 지광국사현묘탑은 탑 이름처럼 현묘(玄妙)하다.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한 상태'를 뜻하는 것처럼 탑호(塔號)를 지을 때 이미 당시의 유행을 뛰어넘는 걸작을 만들고자 의도한 것은 아닐까! 

기록으로 전하는 승탑의 건립연대는 찾을 수 없지만 1085년(고려 선종 2년) 건립된 탑비와 같은 시기로 짐작되는데, 지광국사현묘탑이 당시에 유행하던 승탑과 달리 독창적인 것처럼 탑비 역시 탑에 걸맞게 당시 탑비의 형식과 다르게 '현묘'하다.

탑비의 골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비석의 윗부분 비 머리와 글씨를 새겨 넣는 비몸(碑身), 비 몸을 받치고 있는 받침(碑座)이다. 비석의 머리는 뿔이 없는 용 또는 교룡(蛟龍)을 조각하여 이수(螭首)라 하고, 받침은 거북의 모습을 닮아 귀부(龜趺)라 한다. 비석이 누구의 것인지 알려주는 제목은 초기에는 머릿돌 가운데 네모난 틀 안에 전자체(篆字體)로 세로로 썼는데 이를 제액(題額)이라 한다. 시기가 지나면서 제액 대신 몸돌 윗부분에 가로로 쓰는 두전(頭篆)이 유행한다. 지광국사현묘탑비의 머리와 몸, 받침 모두에서 다른 비석에는 찾을 수 없는  독창성을 보인다.

일반적인 탑비의 머리는 반듯한 네모꼴인데 현묘탑비의 머리는 윗변이 넓은 사다리꼴에 네 귀가 솟구쳐 오르게 조각하였고 가운데는 승탑의 상륜부처럼 두 단의 연꽃 위에 보주를 얹었다. 이러한 모습의 비석 머리는 현묘탑비가 유일한데, 탑의 정면에서 바라보면 현묘탑비의 비 머리는 마치 왕관을 씌운 것처럼 보인다. 비 머리부터 당시까지 다른 탑비에서 볼 수 없는 파격적인 모습이다. 

비석은 돌아가신 분의 일대기를 정리하여 후대에 길이 남기기 위한 기념비이다. 따라서 비석의 중심은 비 몸(비신碑身)이고, 대체로 일반적인 비석의 비 몸에는 글씨만 새겨 기록 전달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현묘탑비는 제목글(두전頭篆) 윗부분에 문자 대신 천상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須彌山)과 용화수(龍華樹)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해를 상징하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를 왼쪽에는 달의 여신 달 토끼(姮娥)를 새겨 넣었다.

삼족오와 달 토끼 좌우에는 향로를 받쳐 들고 긴 옷자락을 날리며 용화수를 향하여 수평으로 날고 있는 중성적인 모습의 하늘 사람(천인天人)을 새겼는데,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그림 외곽에는 커튼을 친 모양(궁륭형穹窿形)으로 두 줄 선을 새겨 화면 안팎을 구분하고, 화면 밖에는 좌우에 각각 한 쌍의 원앙이 희롱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새겼다. 그림 바로 아래에 비석의 제목 글(두전頭篆) '증시지광국사현묘지탑비명(贈諡智光國師玄妙之塔碑銘)'을 두줄로 새기고, 두전 좌우에는 양각으로 봉황을 새겼는데 네 송이의 보상화 꽃과 함께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필자는 2003년 원주시립박물관에서 간행한 '돌에 새긴 뜻 그림, 지광국사현묘탑비'에서 현묘탑비에 새겨진 여러 가지 문양을 뜻 그림과 꾸밈 그림으로 구분한 바 있다. 현묘탑비에 새겨진 그림은 비석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목적 외에 비문(碑文)과 함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묘탑에 그려진 천상의 세계, 도솔천은 지광국사 해린 스님이 입적하고 머무는 곳이 아닐까! 현묘탑비에 새겨진 몇 가지 뜻 그림의 의미를 살펴보자.

수미산은 세계의 중심이며 인간이 살고 있는 염부제(閻浮提)라는 섬에서 멀리 떨어진 신들의 세계이다. 수미산은 황금(黃金), 백은(白銀), 유리(瑠璃), 파리(玻璃) 같은 네 종류의 보물로 이루어져 있다. 수미산의 중허리에는 사방에 사천왕(四天王)이 지키고 있으며, 산 정상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주인인 서른세 곳의 하늘나라 궁전(33天)이 있고, 해와 달은 수미산의 허리를 돌고 있다고 한다.

미륵은 용화수 아래서 세 번의 설법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미쳐 구하지 못한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한다. 미륵신앙의 경전에서 묘사한 용화수는 수많은 수정이 주렁주렁 매달려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현묘탑에서는 수미산 정상에 그려져 중심 그림으로 배치되어 있고, 나뭇잎 대신 화려한 꽃잎이 나무를 뒤덮고 있으며 구슬과 수정이 꿰어진 화려한 보석이 매달려 있다. 

이외에도 도솔천을 표현한 그림 아래 글씨가 새겨진 비석 테두리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으로 장식하였고 비 몸 측면에는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을 새겼다. 비석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꾸밈 그림들이다. 이렇게 세밀한 그림을 돌에 새기기 위하여 다른 비석과 달리 지광국사현묘탑비의 몸돌은 화강암이 아닌 점판암을 사용하였다. 

지광국사현묘탑비와 유사한 비석은 고려 현종 2년(1011)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창건한 현화사비가 있는데 비석 몸돌 윗부분에 그려진 해와 달, 몸돌 측면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은 지광국사현묘탑과 닮았지만 세련됨이나 완성도는 현묘탑과 비교할 수 없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