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광국사현묘탑 상륜부.

950여 년 전(1070년) 해린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탑비를 세울 때(1085년)까지 15년 동안의 공사 끝에 법천사 동쪽 산기슭에 마련된 지광국사 해린 스님의 묘지는 특별했다. 해린 스님의 유해(사리)를 모신 승탑뿐만 아니라 승탑과 탑비 주변에 3동의 건물을 짓고 지광국사 해린 스님을 위한 기념공간, 승탑원을 먼저 조성하였다. 스님의 초상을 모시기 위한 영당(影堂)과 제를 지냈을 것으로 짐작되는 건물들이다. 이제 남은 것은 스님의 유해를 모시고 스님의 생애를 기록한 승탑과 탑비를 세우는 일이다.

승탑을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탑비가 세워진 곳은 아닐 것이다. 탑과 비를 만들려면 완성된 승탑과 탑비보다 수배이상 무거운 거대한 돌을 현장으로 운반해야 하는데 완성된 승탑과 탑비를 옮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또한 석공들이 원석에 글씨와 무늬를 새기는 정교한 작업을 하려면 작업하기 좋은 안정된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승탑과 비석은 솜씨 좋은 석공이 있는 왕도 개성이거나 개성의 석공이 법천사의 어느 공간에 머물며 승탑과 비석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 법천사 동편 산기슭 승탑원의 건물 공사와 승탑과 탑비는 비슷한 시기에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해린 스님의 무덤인 승탑은 파격적이었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서 세운  고승의 승탑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뿐만아니라 이전의 승탑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독창적인 것이었다. 해린 스님이 입적한 이후 고려에서는 지광국사현묘탑과 유사한 승탑은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불교를 받아들이고 전해준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답고 독창적인 승탑이다. 

▲ 지광국사현묘탑 기단에 새겨진 가마 나르는 모습(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지광국사 해린 스님의 사리를 모신 현묘탑이 다른 승탑과 차별화된 독창성은 먼저 승탑의 골격이다. 당시까지 승탑의 기본형태는 대체로 평면이 원형처럼 보이는 팔각형이고 탑의 몸돌(탑신塔身)과 기단의 윗부분은 목조건축물의 지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그러나 지광국사현묘탑은 당시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받침돌(기단基壇)과 몸돌(탑신塔身), 지붕돌(屋蓋石) 모두 정사각형이고 지붕돌은 건물의 지붕이 아니라 창문에 커튼을 친 모습처럼 보인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당대의 유행에서 조금 변형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도 창조적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승탑을 만들었으니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지광국사탑의 또 다른 독창성은 승탑의 표면을 장식하는 돋을새김(부조 浮彫)이다. 당시까지 유행한 그리고 후대인 고려와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승탑의 표면에는 대개 사자나 신장(神將: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장수), 비천상(飛天像: 하늘을 나는 천사), 연꽃 등을 새긴다. 그런데 지광국사탑의 표면을 장식한 돋을새김은 그때까지 승탑에서는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가진 가릉빈가, 구름 속을 걷는 신선(神仙), 커튼이 드리워진 아치형 창문, 하늘을 나는 천인(天人), 역동적인 모습으로 가마를 나르는 사람들과 같은 돋을새김은 승탑에서 처음 나타나는 조각들이다. 이런 이국적인 조각들이 지광국사현묘탑을 이루는 모든 표면에 빈 공간 없이 돋을새김으로 채워져 있다.

불교 미술을 포함한 우리문화에서 우리 고유의 풍습이 아닌 이국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미술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화는 끊임없이 나라와 나라로 전파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경주 원성왕릉을 지키는 무인석(武人石)은 한국 사람이 아닌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이채롭다. 지광국사현묘탑의 모습을 두고 후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상상을 하는데, 그 중 막고굴 제148굴에 그려진 부처님의 관을 운반하는 장면, 열반경 변상도의 상여에서 현묘탑의 원형을 찾기도 한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