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린 스님 950주기 추모제 때 법천사 승탑원에서 춤추는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이애주(1947. 10.~2021.5. 10.) 교수

석가모니 부처님과 예수 그리스도 같은 성인의 삶이 그렇듯이 사람의 평가는 죽은 후에 이루어진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보통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1070년 10월 23일 이슬비 내리는 가을밤, 해린 스님은 우협(右脅)으로 누워 돌아가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할 때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우협 右脅)에서 태어나셨다. 또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 사리불이 입적할  때도 이슬비가 내렸다. 스님의 임종을 지킨 제자들과 비문을 쓴 고려의 문장가 정유산은 스님의 마지막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 사리불의 입적에 비유하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 스님은 고려 전기 나라의 큰 스승으로 국왕으로부터 최고의 예우와 존경을 받으며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당시 국왕과 고려 사회에서는 돌아가신 스님을 어떻게 예우했을까. 돌아가신 사람에 대한 첫 번째 사후평가는 장례 의식이다. 

해린 스님이 돌아가시자 스님을 모셨던 수좌(首座)인 법령(法靈)과 삼중대사(三重大師)인 소현(韶顯)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스님이 돌아가신 사실(부음 訃音)을 국왕 문종에게 알리면서 장례 의식이 시작된다. 비석에 새겨진 글에는 지광국사 해린 스님의 장례식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부음을 들은 문종 임금은 크게 슬퍼하시고 곧 좌가승록(左街僧錄)인 숭연(崇演)과 보장정(保章正)인 전삼린(全參藺) 등을 파견하여 장사(葬事)를 감독하도록 하였다. 이어 특사를 보내서 빈소에 가서 조문토록 하되 장엄하고 정중한 장례를 치르도록 하는 한편, '지광(智光)'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아울러 차와 향(다향 茶香), 초(유촉 油燭)를 하사하였다. 

또 원주(原州) 창고(흥원창)에 있는 양곡으로 스님의 영가(靈駕)를 극락세계로 천도(薦度)하는 법요식(法要式)에 필요한 경비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1월 9일 법천사(法泉寺)의 명봉산(鳴鳳山) 동쪽 승지(勝地)를 선택하여 다비례(茶毗禮 화장)를 거행하였다. 

이때 인간과 영기(靈祇 인간계에 속하지 않은 천신)가 비통하며 슬퍼하고, 천지(天地)가 캄캄하며 새·짐승들은 슬피 울고, 봉만(峰巒 산봉우리)은 처참하게 줄지어 섰으니, 유정(有情)과 무정(無情) 등이 모두 국사의 도덕이 끝남에 대하여 슬퍼한 것인가!

문종 임금이 직접 관리를 파견하여 장례를 감독하고 특사를 파견하여 조문하였으며, 장례 비용은 세금으로 거둔 흥원창의 곡물을 사용했으니 해린 스님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장중하게 거행된 것이다. 비석은 장례식이 끝난 후 15년이 지난 1085년 세워져 스님을 추모하는 모든 의식을 마무리하게 된다.    

비석 뒷면에 새긴 글을 비음(碑陰)이라 하는데 지광국사 해린 스님의 비를 세우는데 뜻을 같이한 사람들의 면면을 기록하고 있다. 명단은 승통, 삼중대사, 중대사, 대사, 대덕 등 승계(僧階 승려의 계급)와 스님과의 학연 관계에 따라 구분하고 있는데 모두 1천350여 명에 이른다. 

비음에 기록된 사람들을 스님의 장례에 관여한 사람들로 본다면 대규모 장례위원단이다. 비음 첫머리에 등장하는 인물은 현화사주지(玄化寺主)이며 승통(僧統)인 소현(韶顯)이다. 소현은 당시 고려 왕실의 외척이자 고려시대 최대의 문벌인 이자연의 아들로 해린 스님에게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었다. 

이자연은 딸 셋을 문종 임금에게 시집을 보내 인예태후(仁睿太后)·인경현비(仁敬賢妃)·인절현비(仁節賢妃)가 되었다. 특히 인예태후는 순종·선종·숙종을 낳아 인종에 이르기까지 왕들 모두가 인예태후의 혈통이었다. 그러니 해린 스님의 제자 소현은 문종 임금의 처남이고 후에 국왕이 되는 왕자들은 누이의 아들이니 조카들이다. 이자연은 아들 소현 스님 외에도 손자인 승통(僧統) 이세량(李世良)과 증손자인 이의장(李義莊)은 현화사(玄化寺)에 있으면서 법상종(法相宗)의 세력을 장악하였다. 

두 번째 인물은 속리사주지(俗離寺主)이며 왕자로써 승통(僧統)인 석탱(釋竀)이다. 석탱은 고려 15대 숙종의 셋째 아들로 뒤에 국사가 된 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儼)이다. 해린 스님의 장례를 주관한 장례위원이 이정도이니 스님은 돌아가신 후에도 최고의 예우를 짐작할 수 있다.   

비석 뒷면 비음의 마지막 문장은, 안민후(安民厚)가 글씨를 쓰고, 이영보(李英輔)와 장자춘(張子春) 등이 글씨를 새겨, 1085년 8월(음력) 비석을 세웠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