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린 스님은 고려 전기 현종 임금과 그의 아들로 국왕이 된 덕종, 정종, 문종 등 3명의 임금으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 특히 해린 스님을 온 나라의 스승 국사로 추대한 문종 임금의 스님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특별했다. 해린 스님을 국사로 추대할 때 금과 은으로 장식된 국왕의 의전용 가마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에 갈 때도 임금의 가마를 함께 타고 다닐 정도였으니 문종 임금의 스님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짐작할 수 있다.

문종 임금은 조선의 세종대왕에 비견되는 고려 최고의 성군이다. 임금이 되자마자 백성들을 위한 민생 관련 법률을 제정하였고, 넷째 아들(휴煦, 대각국사 의천)을 출가시켜 승려가 되게 하였으며 흥왕사를 준공하는 등 불교를 더욱 장려하였다. 

학문과 예술에도 힘써 송나라의 앞선 문화를 받아들였고 유교를 장려하여 최충의 9재와 12도를 설치하는 등 사학을 발전시켰다.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재능을 발휘하게 하였으니 학문과 예술, 건축, 무역이 모두 발전하여 고려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문화강국이 되었던 것은 문종 임금의 타고난 성품과 자질 때문이기도 했다. 문종은 공부하기 좋아했으며 글씨를 잘 써 양주 삼천사(三川寺) 대지국사비(大智國師碑) 비문을 직접 쓰기도 했다.

고려의 성군 문종에게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국사에 추대된 해린 스님이었지만 스님도 세월은 피해 갈 수 없었다. 또 스님은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설 때를 알고 있었다. 해린 스님은 개성을 떠나 지방으로 하산(下山)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문종 임금은 허락하지 않는다. 세 번의 요청 끝에 마침내 하산을 허락받고 고향 원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가 하산처로 삼은 곳은 처음 승려가 되려고 찾아갔던 법천사이다. 해린 스님이 개성을 떠나 고향 원주로 돌아갈 때도 문종은 최고의 예우로 해린 스님을 송별했는데 지광국사현묘탑비에는 문종의 극진한 송별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067년(문종 21) 3년 2월 일에 국사께서 법천사(法泉寺)에 돌아가 편히 머물고자 여러 차례에 걸쳐 노년의 탄식을 일으키며, 여러 차례 임금께 사퇴(辭退)할 것을 간청하여 세 번이나 거듭 문서로 올려 간절한 사의(辭意)가 확고함을 알렸다. 문종은 하는 수 없이 허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해 9월 22일 왕이 현화사(玄化寺)에 행차하여 대중스님 모두에게 공양을 베풀고 아울러 국사를 석별하는 송별연회(인전연寅餞筵)도 마쳤다.

임금은 양반의 관솔(官率)을 거느리고 국사에게 하직 인사를 한 다음, 좌승선(左承宣)이며 중서사인(中書舍人)인 정유산(鄭惟産)을 파견하여 수결(手結)을 찍은 조서(調書)와 차(茶), 약(藥), 보화(珤貨) 등을 올렸는데, 그 이름과 수가 너무 많아 모두 기록하지 않는다. 국사는 이 달 27일 출발하여 본산(本山)인 법천사(法泉寺)로 떠났다. 임금이 태자(太子)에게 명하여 제왕백료(諸王百僚)를 거느리고 남쪽 성밖까지 가서 송별하게 하고 특별히 도속(道俗)의 관원(官員)을 보내어 법천사까지 호송(護送)토록 하였다. 

세 번의 간청 끝에 마지못해 허락, 임금이 직접 해린 스님이 머무는 현화사에 가서 베푼 송별회, 태자에게 명하여 고위 관료들을 이끌고 개성의 교외인 성밖까지 나가 스님을 배웅하게 한 것 모두 특별한 일이다. 998년, 스님의 나이 15세 때 고향 원주를 떠났으니 69년 만의 귀향이다. 

고향 원주에 돌아온 스님은 3년 만에 돌아가셨는데, 생의 마지막을 그가 처음 출가한 법천사에서 맞이한다. 스님이 태어날 때 어머니의 태몽이 큰 스님이 될 것을 예견했지만 돌아가실 때도 특별했다. 비문이 전하는 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살펴보자.         
이 해 10월 23일 편안히 우협(右脇)으로 누워 취침하였다. 이날 밤에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국사께서 잠을 깨어 가부좌(跏趺坐)를 맺고 앉아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바깥 날씨가 어떤가?"하니 대답하기를 "이슬비가 내리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서 곧 입적하였다.

옛적 추자(추子)가 입적(入寂)함에 당하여 무색계(無色界)의 제천(諸天)이 흘린 바 눈물이 마치 봄에 내리는 이슬비와 같았으니, 지금 국사께서 시화(示化)하던 오늘밤에 내린 비인들 어찌 제천(諸天)이 흘린 눈물이 아니겠는가. 오호 애재(哀哉)라! 세수는 87세요, 승랍은 72세였다. 입적(入寂)하던 전날 밤에 등불만한 크기의 두개의 별이 나타났고, 또 두 줄기의 큰 무지개가 섰는데, 마치 두마리의 적룡(赤龍)이 나란히 누워 있는 것과 같았다. 이것은 국사께서 입적(入滅)하실 조짐을 보인 것이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