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왕진 다녀왔어요. 네 분. 한 분은 지지난 주에 다녀온 분이라 의사소견서만 끊었지요. 보통 왕진 요청은 장기요양등급 신청용 의사소견서 발급과 영양수액제 주사가 대부분입니다. 가정간호 대상자 진료도 있습니다. 오늘 기억에 남는 분이 계세요.

 한 분은 단계택지 빌라 임대주택에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입니다. 문을 여러 번 노크하고 한참 후에야 문이 열렸어요. 웃옷만 입고 바지는 팬티만 입고 있어 앙상한 작대기 같은 다리를 볼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작은 방에는 여러 물건이 널려져 있어 발 딛기도 어려울 정도였어요.  

 얇은 매트리스 위에 계신 할아버지를 진찰하려면 청진기를 들고 물건들을 헤치고 가까이 가야 했지요. 밥상공동체복지관에서 의뢰 온 어르신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생활관리인이 방문하는데, 요양보호사의 매일 방문은 거부하셨답니다. 이유를 물으니 필요 없다고, 문 열어 주는 것도 힘들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컴퓨터도 있고, TV뉴스도 보시고 계셨고 작은 밥상에는 빈 잔과 담배가 놓여있고 옆에는 막걸리 한 병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한 달 55만 원 정도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비로 생활하시는데 부족함 없이 즐겁게 사시는 것으로 보였어요.

 젊어서 한전을 다녔고 IMF 때 명퇴했고 이혼도 했어요. 먹는 약은 비타민만 있다고, 지금은 치아가 두 개밖에 남지 않아 의치 하러 치과에 택시 타고 다니신다네요. 병원 가는 게 힘드시면 밥상복지관에 연락하시라고 했습니다. 무리해서 혼자 다니시다가 다치실지 모르니까요.

 저보다 몇 살 많지 않은 어르신을 보면서 인생이 별거 아니다,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방 하나면 충분하고, 가족이 없어도 편하게 살 수 있고, 행복해 보였어요. 막걸리 한 병, 담배 한 갑이면 충분해 보이더군요.

 또 한 분은 도서관 앞 오피스텔에 계시는 할머니. 저는 오피스텔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어요. 처음 들어가 봤는데 그냥 원룸이더군요. 9층이라 전망도 좋고 혼자 살기에는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는 누워만 계시는 와상 환자예요. 장기요양 신청에 필요한 의사소견서 끊으러 갔지요. 이렇게 꼼짝 못 하는 환자가 소견서 끊으러 병원에 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얘기 같아요. 그래서 왕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다니면서 자주 듭니다. 

 제가 병원 퇴직하고 아르바이트같이 주 1회 왕진을 다니고 있는데, 사회에 무척 필요한 일이고 제게 주어진 마지막 봉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서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진료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따님이 케어하시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하루 4시간씩 오세요.

 1주 전에는 패혈증으로 의료원에 입원하셨었고, 전에 요양원에 계시다가 1년 전에 따님이 이 집을 얻어 어머님을 모시고 나오셨지요. 따님은 다른 지역에 계셨는데, 일부러 원주로 오셨대요. 그리고 아드님이 원주에 계시답니다. 저는 작년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셔본 경험이 있어서 알아요. 지척에 계시는데 뵙고 싶을 때 뵐 수가 없었던 것이 제일 고통이었지요. 따님이 우리 나오는데 말하더군요. "짧게 효도하고 긴 행복 가지렵니다". 참 현명한 따님이고 행복한 어머님이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왕진 다니며 빈곤과 행복 그리고 노년의 삶을 배웁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행복하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누구에게나 닥쳐올 노년의 삶 말입니다.

곽병은 밝음의원 원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