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전경.

원주는 고려가 시작된 곳이고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 원주로 유배되면서 고려가 문을 닫고 조선이 시작되었으니 원주는 고려의 시작과 끝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원주에서 고려의 모습을 찾는 것은 조금 더 가까운 과거인 조선시대보다 어렵지 않다. 고려의 불교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운 곳 역시 원주이다. 원주에 남아 있는 불상과 석탑, 절터(폐사지) 대부분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들이다. 

원주에서 만날 수 있는 불교 문화재는 지역적으로 치악산에 세워진 산사(山寺)와 도심에 세워진 도시사원 그리고 한강수계에 세워진 강변사원인 강사(江寺)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 한강 주변에 세워진 사원은 고려 전기의 왕사, 국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 문화재는 고려를 대표할만하고 규모도 경주와 부여, 개성 같은 도읍지의 사원에 버금간다. 남아 있는 문화재의 수준과 수로 보면 원주는 고려 불교문화의 중심지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정부인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업 자원과 문화재 조사를 시행하였다. 경주와 부여, 공주, 평양과 개성 같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도읍지는 물론이고 한반도 북쪽 끝 신의주에서 제주까지 우리나라 전 지역의 문화재를 조사했다. 총독부의 주도로 문화재 조사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이 세키노 다다시(관야정)이다. 그는 우리나라 전 지역의 문화재 조사를 마치고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를 간행하였는데 이 책은 방대한 자료 수록과 학술적 성과가 뛰어나 프랑스 학사원상을 받기도 하였다. 

원주가 고려 불교문화의 중심지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원주지역의 문화재를 보살펴온 필자만의 주관적인 주장은 아니다. 세키노 다다시의 조수로 우리나라 문화재 조사에 참여한 야츠이 세이이치(谷井濟一)가 〈조선통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을 보자. 그는 '원주군에서는 제법 수확이 많았습니다. 원주읍 부근에는 신라말의 철불, 석불, 석탑이 흔해 빠지게 널려있는 것이 경주도 놀라 맨발로 도망갈 정도입니다.'라고 썼다. 필자는 이 글이 원주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 지역의 문화재를 조사한 일본인 학자의 소회이니 객관적인 입장에서 원주의 문화재를 바라보고 평가한 것으로 생각한다.

문화재는 과거의 문화 양상과 수준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불교 문화재 역시 종교를 떠나 도시의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라 할 수 있는데, 일본인의 눈에 비친 원주의 문화 수준은 경주와 비교할 만큼 뛰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사상 한 번도 도읍지가 된 적이 없는 원주를 '신라 천년고도, 우리나라 문화 수도, 한국 관광 일번지'라고 불리는 경주에 버금가는 도시로 비교한 일본인 학자의 주장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원주는 볼만한 곳이 없는, 관광자원이 빈약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원주에서 나고 자란 '원주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의 원주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원주를 관광도시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니 여름이나 겨울 휴가 때와 수학여행지로 원주를 떠올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경주도 놀라 맨발로 도망갈 정도로 우수한 문화재가 많았던 원주인데 볼 것 없는 도시라니, 100년 전 야츠이 세이이치의 주장이 허언이란 말인가!

고대로부터 한반도 중심부 내륙의 물류기지로 경제의 거점이자 문화전파의 요충지였던 흥원강 은섬포를 기반으로 성장한 강변 사원이 거돈사와 법천사이다. 특히 법천사는 고려 전기 4명의 국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던 지광국사 해린 스님이 왕도 개성을 떠나 하산한 사원이다. 절이 불타고 법등 꺼진 법천사터에는 고려 불교의 정수인 지광국사현묘탑비가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골동상에 의하여 원위치를 떠난 지광국사현묘탑이 돌아오면 원주의 자랑이자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지난주 필자가 근무했던 원주역사박물관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 12월 28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을 개관한다는 내용이다. 이번에 문을 여는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은 필자가 재직 중이던 2019년 계획을 수립하고 행정절차를 진행하여 착공한 사업이다. 이 전시관은 거돈사와 흥법사지를 연결하는 원주 강변사원 관광의 키스테이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를 보니 전시관 운영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배정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안방의 보물을 보물로 보지 못하는 원주시의 관행이 원주를 관광의 불모지로 만든 것은 아닌가.

지금 임시방편으로 박물관 학예연구사들이 돌아가며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업무를 겸하고 있다고 한다. 개관을 앞두고 무거운 마음과 함께 후배들에게 짐을 안겨준 겪이니 미안하기까지 하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