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6년 원주의 홍수 피해를 보여주는 1936년 8월 18일 매일신보 사진기사. 탁류가 소용돌이 치는 원주교와 물에 잠긴 감영 앞 도로, 주먹밥을 만들어 수재민에게 나누어주는 교회와 섬으로 고립된 신촌 모습 등 당시 극심한 피해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원주는 자연재해가 없는 복 받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6월부터 8월까지 여름에 강수량이 집중되어 해마다 홍수 피해가 발생한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발생하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도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이다. 자연재해는 농촌과 산간, 해안지역뿐만 아니라 서울과 같은 대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집중호우로 도로가 침수되어 교통이 마비되고 정전으로 가정과 공장에 전기가 끊기는 일도 있다.

필자가 원주에 살기 시작한 것은 1981년도이다. 그 이전까지 영월에 살았는데 크고 작은 홍수를 경험했다. 특히 1970년 홍수는 피해가 컸다. 영월 시가 전체가 불어난 동강 물에 잠겨 도시기능이 마비되고 주민 대부분이 이재민이 되는 일도 경험했다.

당시 초등학교 재학 중이었는데 학교 교실이 이재민 수용소가 되는 바람에 임시 휴교로 학교를 쉬었던 기억도 있다. 1981년 원주로 이사하고 난 이후 영월에서 겪었던 물난리를 원주에서는 보지 못했으니 필자의 경험으로도 원주는 자연재해가 없는 복 받은 도시이다. 그러나 과거 원주는 자연재해로부터 결코 안전한 도시는 아니었다. 고대에 원주를 흥하게 했던 흥원창 시대의 막을 내린 것도 홍수 때문이었다. 

1800년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지도(국립박물관 소장, 원주지도)에는 '원주는 봉천의 범람으로 3대를 이어가는 집이 없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에는 원주천의 범람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는 조선시대에 작성된 고지도 중 원주의 지명을 가장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원주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원주천 인근 개운동의 지명인 '도말'은 원래 도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성촌인데 수해로 주택이 파괴되고 도씨들이 떠났다는 구전이 전하기도 한다(개운동 거주, 황하섭 구술). 보다 객관적인 홍수 피해는 근대기에 발행된 신문에서 찾을 수 있는데 1920년대와 30년대의 원주는 자연재해, 특히 홍수 피해가 다른 지역 못지않게 극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922년 8월 8일 매일 신보 기사를 보면 7월 29일 오전 4시부터 시작된 집중호우로 원주천이 범람하여 13호의 가옥이 유실되고 백여 호의 가족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1925년 7월 17일 시대일보에는 7월 11일 오전 7시부터 퍼붓는 비로 충주에서 내려오는 한강 상류와 원주 문막강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하여 다음 날 오전 2시에는 부론면 흥호리에 물이 밀려들어 43호가 침수되고 떠내려간 집이 2호이며 강가에 매어놓은 배 1척이 떠내려갔다는 기사가 있다.

1930년에도 홍수 피해가 있었는데, 매일신보 1930년 7월 24일 '원주보교(원주초등학교) 학생 감소로 오할 이상 등교 의문'이라는 제하의 기사에는 '원주읍을 중심으로 3리 주변이 거의 전멸이 되어 참혹하고 초등학교 학생도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는 자가 오할에 달한다.'고 쓰고 있다. 두 기사 모두 원주천의 범람으로 인한 원주 시가의 피해를 전하고 있다. 

같은 신문 7월 25일자 기사에는 7월 1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호우로 인한 원주의 피해 상황을 자세히 전하고 있는데, 사망 26인, 주택 유실 65호 외에 가축과 농경지 유실 등 큰 피해가 있었다. 

더 큰 피해는 1936년의 이른바 병자년 대홍수 때이다. 1936년 8월 10일자 조선중앙일보에 따르면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강원 남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폭우가 쏟아졌는데, 원주가 568㎜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이 횡성 279㎜, 평창164㎜ 순이었다. 대홍수로 원주 흥호리는 '전멸'상태로 아비규환의 참상을 빚고 있으며 이재민 1,000여명이 거리에 방황하고 있다고 전한다.

부론지역에는 강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가 컸지만, 강과 떨어진 지역에는 산사태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 1936년 8월 20일 매일신보에는 원주군 소초면 의관리 후평동에서 8월 11일 아침 9시경 심한 폭우로 뒷산에 사태가 나자 집에 있던 시아버지를 구하려던 며느리가 함께 압살당했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볼 수 있다. 

1936년 12월 17일 매일신보는 8월의 수마로 생명을 빼앗긴 사람이 원주에만 70여 명이나 되었는데 8월 12일 원주 법천사에서 수해 이재자 위령제를 거행한 사실을 전한다. 4개월이 지나서야 홍수 피해 사망자의 위령제를 지낼 정도로 피해가 컸음을 알 수 있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