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섬포에서 바라본 해넘이. 은섬포는 세곡 운반 외에도 서울과 경기지역을 오가는 여객터미널이었다.

4세기 무렵 혹은 그 이전부터 큰 세력을 이루었던 법천리 무덤의 주인공들은 무덤이 있는 개치 마을 앞 한강을 무대로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이 살았던 마을은 한강과 섬강이 운반한 비옥한 충적지로 농사짓기 좋은 곳이어서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농사뿐만 아니라 마음 앞을 흐르는 강은 백제의 옛 도읍지 서울로 가는 뱃길이고 물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서해에 이른다. 그러니 한강 중상류 지역인 법천리 일대는 물길을 이용하여 드나들기 좋은 지역이다. 

강은 물길이 지나는 마을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다. 조양강(정선), 동강(영월), 여강(여주) 모두 한강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면 원주에서는 한강을 어떻게 불렀을까? 지금 원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즐겨 부르는 이름은 남한강이다. 그런데 남한강은 그리 오래된 이름은 아니다. 지금보다 앞선 조선시대에는 없었던 이름이다. 조선시대 때 법천리 앞을 흐르는 강 이름, 그러나 지금 원주 사람에게 잊혀진 강의 이름은 흥원(興原)이다.

흥원강(興原江), 원주를 일으키는 강. 원주의 번영을 이끄는 강이니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고려 13 조창 중 하나인 흥원창(興原倉)은 강 이름 흥원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원주 번영의 원천인 흥원강의 이름을 잊고 지냈다. 흥원강에는 과거 원주 사람들이 백제와 조선의 도읍지 한성과 고려의 도읍지 개성으로 가는 포구, 은섬포(銀蟾浦)가 있었다. 

은섬포는 섬강과 흥원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있었다. 고려는 개경으로 세곡을 운반하기 위한 배(조운선)가 드나들 수 있는 포구를 적극적으로 운영하였다. 한반도의 남해안과 서해안, 그리고 한강 수계에 60개의 포구를 설치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은섬포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를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한 근본은 세금이다. 화폐제도가 정착되기 이전 세금은 백성들의 수고로움으로 얻은 곡물(세수미稅收米)이었다. 

▲ 흥원창 재현 모형(원주역사박물관).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관리하는 일은 고대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육로가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 세수미를 운반하기 위한 수단은 물길에 배를 띄워 운반하는 것이 수월하였다. 조창은 각 지역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물을 보관하고 왕의 도시 서울로 보내는 기능을 담당한 관청이다. 고려 전기에는 전국의 해안이나 내륙의 큰 강에 설치한 60개의 포구에서 세곡 운반을 맡았으나 그 후 13개의 조창으로 정비하였다.

조창은 주로 남해와 서해안의 바닷가에 설치하였는데 바다가 아닌 내륙에 설치한 조창은 충주의 덕흥창과 원주의 흥원창 두 곳이다. 해안에 설치한 조창을 해창, 내륙에 설치한 조창을 강창이라 한다. 조창에는 관리를 배치하고 거두어들인 세곡을 관리하고 수도 개경으로 보내는 일을 맡겼다. 

은섬포는 세곡 운반 외에도 서울과 경기지역을 오가는 여객 터미널이었다. 수 많은 문객들이 은섬포를 통해 원주를 오가며 시문을 남겼는데, 이달과, 정약용, 허균, 난설헌 남매가 그들이다. 고려 전기의 고승 지광국사 해린 스님이 왕사의 소임을 다하고 고향 원주 법천사로 돌아올 때에도 은섬포에서 배를 내려 고향 땅을 밟았다. 고려의 공양왕과 조선시대 비운의 소년 왕 단종에게 은섬포는 다시는 그의 도성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운의 포구였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