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천리 고분 4호 무덤(법천리 고분 1, 국립중앙박물관).

1999년 5월 3일 시작된 법천리 옛 무덤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는 6월 30일까지 이어져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이 조사는 1973년 마을 주민 홍병주 씨가 발견 신고한 양 모양 청자와 왕릉급에서 발견되는 한성백제 시기 유물이 나온 무덤에 대한 학술조사였다. 조사 결과 1973년 주민들이 수집하지 못한 금귀걸이와 청동 등자 같은 유물을 발견하였다. 또한, 무덤의 크기와 형태에 대하여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99년 발굴조사에서는 홍병주 씨가 증언한 2기의 백제 무덤 외에도 6기의 무덤을 더 찾아내어 모두 8기의 무덤을 조사하였다. 6기의 무덤은 백제, 2기의 무덤은 신라계열의 무덤으로 조사단은 추정하였다. 한성(서울)에 있었던 백제의 도읍지가 부여로 옮겨가고 세력이 커진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역사적 사실(史實)을 법천리 고분이 입증하는 것이다. 

1973년 알려진 1호와 2호 무덤 외에 발굴조사로 알게 된 4호 무덤도 흥미롭다. 4호 무덤은 1973년 홍병주 씨가 청동초두와 금동 신발 조각 같은 고급 유물을 발견한 1호 무덤에서 북쪽으로 6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무덤 역시 천장에 3개의 도굴로 짐작되는 구멍이 있어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벽과 바닥은 그대로 남아 있어 무덤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무덤 남쪽 측면에 계단을 만들고 출입구를 설치한 횡구식(橫口式) 석실 무덤이었다.

무덤의 규모뿐만 아니라 4호 무덤에서도 금동신발 조각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남한강 중류 지역인 법천리 일대에서 활동한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지배계층임을 짐작하게 한다. 

4호 무덤에서는 두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뼈(人骨)가 발견되었다. 뼈의 상태와 개체수가 적어 나이와 성별을 정확하게 짐작하기 어렵지만, 한 사람은 40∼60세로 추정되고, 또 한 사람은 화장(火葬)을 한 남성의 뼈로 추정된다. 도굴되지 않고 온전하게 무덤이 보존되었다면 뼈로 남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남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발굴조사 당시 찾은 유물은 먼저 무덤을 다녀간 사람들이 흘리고 간 것이어서 무덤의 주인공을 파악할 수 없다.

▲ 유리구술과 관옥.

4호 무덤은 비록 도굴되기는 했지만 1호 무덤처럼 금동신발 같은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여러 종류의 고급 유물이 나왔다. 또 1호 무덤에서 볼 수 없었던 가운데 구멍이 뚫린 옥으로 만든 10개의 대롱(管玉)과 10개의 유리구슬이 발견 되었는데 무덤의 주인공이 걸었던 목걸이였을 것이다.

1호와 2호 무덤처럼 나무관에 쓰였던 다수의 쇠못과 꺽쇠가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목관에 묻혔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머그컵 형태의 칠기와 귀가 달린 칠기 술잔(耳杯), 생선뼈가 발견되었다.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모두 귀하고 흥미롭지만 필자는 칠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대개의 무덤에서 나무로 만든 칠기가 발견되는 경우는 사례가 흔하지 않은데, 나무는 부패하기 쉬워 오래 보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옻나무의 수액인 칠은 생산량이 적고 채취하기도 어려워서 예나 지금이나 최상의 도료(塗料)로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려시대 때 크게 유행한 나전칠기(螺鈿漆器)를 떠올리지만, 고려시대 보다 앞선 고대에는 전복이나 소라 같은 조개껍질을 사용하지 않은 칠화칠기가 먼저 유행했다. 칠화칠기는 패각류(貝殼類) 대신 옻나무의 수액인 칠에 여러 가지 안료를 섞어 만든 색칠(色漆)로 기물의 표면을 장식하는 칠공예 기법이다. 

▲ 법천리 고분 컵 모양 칠기.

법천리 고분에서 발견된 컵 모양 칠기는 지금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머그컵과 닮았다. 컵의 안쪽에는 붉은색 칠(朱漆)을 하고 바깥쪽은 검은 칠을 했는데 컵 윗부분에는 붉은 테를 돌리고, 두 줄의 붉은 테 아래 톱니(이빨) 모양의 역삼각형 띠무늬(鋸齒文)를 돌려 장식했다. 컵의 아래에도 한 줄의 붉은 테와 거치무의를 돌렸다. 

칠화칠기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했지만 거치무늬는 우리 민족이 즐겨 썼던 무늬이다. 따라서 이 컵 모양 칠화칠기는 중국에서 건너온 수입품이 아니라 법천리에서 만든 칠화칠기일 수도 있다. 

컵 모양 칠화칠기와 함께 4호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중 흥미로운 것은 생선뼈인데, 남한강에서 살던 민물고기가 아니라 바닷고기 뼈이기 때문이다. 법천리 무덤의 주인공은 어떤 생선을 즐겨먹었을까?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nmpr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