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홍병주 씨가 발견한 등자(왼쪽)와 1999년 발굴조사로 16년 만에 짝을 찾은 등자(오른쪽).

1999년 5월 부론면 법천리 부론초교 옆 평범한 밭에서 소박한 개토제(開土祭)가 열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농사짓기 좋은 고운 모래흙이 쌓인 평범한 밭이지만 밭을 경작해온 주인과 역사학계에서 주목하던 곳이다. 개토제는 집을 짓거나 죽은 이를 위한 무덤을 조성할 때, 공공청사나 도로 건설에서 공사의 기초가 되는 토목공사에 앞서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례이다. 땅을 파기 전 토지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개토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에 소속된 고고학 전공자들과 그들을 도와 땅을 파고 흙을 나르기 위해 고용된 현지인들이다. 개토제가 열린 곳은 1973년 4월, 당시 토지 소유자 홍병주 씨가 두 곳의 무덤에서 양 모양 청자와 청동초두, 토기 같은 30여 점의 유물을 발견한 법천리 1532번지이다. 이곳의 옛 무덤들은 고대 원주의 비밀을 품고 있는 곳으로 청자 양 발견 후 16년 만에 발굴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1973년 발견 신고된 유물들이 고대 왕릉급에서 발견되는 고급 유물들로 평가하고, 무덤의 주인공은 고대 삼국의 각축장이었던 이 지역에서 부(富)와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계층일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부에 의하여 발견 신고된 유물과 증언 외에 무덤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파악할 수 없어 발굴조사가 시급한 곳으로 생각하던 곳이다. 1999년 발굴조사로 고대 원주의 비밀을 품고 있는 법천리 무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조사가 시작되고 밭의 겉흙 바로 아래에서 무덤의 흔적이 나타났다. 무덤이 묻혀있는 밭은 남한강의 물과 바람이 실어 나른 고운 모래가 쌓인 언덕을 평평한 밭으로 경작하면서 무덤을 덮고 있는 흙이 상당 부분 깎인 상태였다. 밭을 갈면서 드러난 무덤의 돌은 농사에 불편을 주었기 때문에 대부분 오래전에 파괴되고 치워졌다. 겉흙 아래에서 바로 무덤에 쓰였던 많은 돌이 쉽게 드러난 이유이다.

▲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 때 법천리 1호 무덤에서 찾은 금귀걸이 한 쌍.

1973년 홍병주 씨가 밭을 갈면서 많은 유물을 찾았던 1호 무덤에서는 당시 신고한 등자(말을 타는 기수의 발걸이) 1개와 짝을 이루는 나머지 하나의 등자를 찾았다. 또 금으로 만든 지름 1.3cm의 둥근 고리에 지름 0.6cm의 고리를 감아 금실에 하트 모양의 금판이 달린 귀걸이 한 쌍과 금동 신발에서 떨어져 나온 T자 형태의 금동 조각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내부 북편 동쪽벽 부분에서 찾은 이 금동 조각은 1973년 발견된 금동신발 조각과 같은 신발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금귀걸이와 금동신발이 발견된 곳은 무덤 중앙에서 북쪽에 치우친 곳으로 시신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데, 무덤의 주인공은 무덤의 북쪽편에 안장(安葬)되어 강이 흐르는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말을 탄 기수의 발걸이인 등자와 금동신발은 홍병주 씨가 증언한 1973년 발견 당시의 상황을 뒷받침한다. 이외에도 나무판을 고정하는 쇠못과 꺽쇠가 발견되어 목관에 시신을 안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73년 양 모양 청자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진 2호 무덤은 크게 파괴되어 원래 무덤의 규모와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홍병주 씨가 청자 양을 발견할 때 같은 무덤에서 3개의 토기와 숫돌 1개를 발견하였는데, 1999년 발굴조사에서는 다수의 쇠못과 꺽쇠, 작은 칼 외에 주목할만한 유물은 찾지 못했다. 양 모양 청자가 발견되었다고 지목했던 무덤치고는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유물의 수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1999년 발굴조사 당시 무덤의 일부만 남아 있고, 반면 나무관에 쓰였던 다량의 쇠못과 꺽쇠만 발견된 것은 오래전 인위적인 무덤의 해체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홍병주 씨의 증언에 따르면 2호 무덤은 1962년 그의 아버지와 형이 금동신발을 발견했다고 증언한 무덤이다. 금동 신발을 발견하던 날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구경 나올 정도로 마을 사람이 모여 떠들썩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무덤 해체를 도왔으니 무덤의 돌들은 알뜰하게 치워졌고 유물은 모두 반출되었기 때문이다. 1999년 발굴조사 당시 쇠못밖에 찾지 못한 이유는 1962년 마을 사람들의 수고 때문으로 짐작된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