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강 제방에서 바라본 법천리 고분군과 부론초등학교. 주변 농경지보다 높은 지형임을 알 수 있다.

무덤은 기록이 빈약한 고대의 역사를 복원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다수의 고대 유적이 말해주듯이 산 사람의 집터 주거지보다 죽은 사람의 집, 무덤은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부여와 공주, 경주에 남아있는 백제와 신라의 왕릉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그 어떤 기록보다 생생하게 과거 영화를 누렸던 국왕의 일상을 전하고 있다. 그들이 숨 쉬며 살았던 궁궐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으니 무덤이 왕들의 일상을 실증하는 단서인 셈이다. 도읍지의 왕릉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일반인의 무덤도 같다. 무덤은 고대인의 수장고(收藏庫)이자 사고(史庫)이다.

부론면 법천리는 고대의 공동묘지였다. 지금은 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와 학교, 금융기관 같은 공공 기관이 들어서고 시장이 열리는 부론면의 번화가이어서 아무도 그곳이 고대의 무덤이 모여있는 공동묘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론면의 중심지역인 법천리 개치마을은 본격적인 역사시대가 열리는 마한과 백제시기 고대 원주의 비밀을 품고 있는 무덤 위에 조성되었다. 법천리 개치마을이 지금과 같은 부론면의 중심지가 된 것은 1938년 이후이다.

원주에 사는 시민들은 원주는 자연재해가 없는 복 받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주도 과거에는 자연재해가 비켜 가지 않았다. 그 사실은 1938년(무인년) 원주를 휩쓸고 간 홍수가 말해준다. 1938년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내린 폭우로 원주는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남한강과 접한 부론면의 수해는 참혹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론면사무소와 부론초등학교, 지서가 세워지고 시장이 열렸던 옛 부론면의 중심지 흥호리 일대는 폐허가 되었다. 흥호리에 있던 면사무소와 학교 같은 공공시설은 홍수로 사라지고 법천리 개치마을로 옮겼다. 

현재 부론면의 중심지인 법천리 개치(開峙)마을이 홍수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형 때문이다. 개치마을은 남한강과 접한 부론면의 여러 마을 중에서 비교적 높은 곳이어서 1938년 병자년 대홍수 때도 큰 피해가 없었다. 마을 이름으로 높은 언덕을 뜻하는 치(峙)를 쓴 것도 지형에서 유래한다.

홍수가 지나가고 재해를 복구하면서 면 소재지를 옮긴 까닭이고, 고대 마한과 백제, 신라인이 법천리 개치마을에 무덤을 쓴 이유이다. 필자는 마을 주민에게 외양간을 지으면서 고분을 훼손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지금은 신도시 조성에 앞서 문화재 조사를 선행하지만 그런 제도가 없었을 때이니 더 많은 고대의 무덤이 훼손되었을 것이다.

처음 법천리 개치마을에서 고대의 무덤이 확인된 것은 부론초등학교 뜰이다. 학교를 지을 때 고대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학교 교정에 작은 표지석을 세워 놓기도 했다. 발견 당시 기초적인 문화재 조사가 없어 무덤의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표지석에는 인골과 토기가 발견되어 고대의 무덤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단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후 법천리 개치마을에서 대규모 고분이 확인된 것은 1999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주도로 시작된 문화재 발굴조사이다. 발굴조사는 2007년까지 모두 4차에 걸쳐 시행되었는데 마한과 백제, 신라의 무덤 35기가 발견되었다. 

무덤이 발견된 곳은 부론초등학교 북쪽 밭으로 경작되는 농경지이다. 평범해 보이는 법천리의 밭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목하고 발굴조사를 하게 된 이유는 1973년 마을 주민이 발견하여 신고한 한 점의 매장문화재 때문이다. 마을 주민의 신고 후 26년 만에 이루어진 문화재 발굴조사이니 그리 신속한 것은 아니지만 성과는 컸다. 혁신도시에서 찾은 통일신라시기 무덤보다 앞선, 마한과 한성백제시기의 법천리 무덤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도자기와 금동제 장식품 같은 유물도 품고 있었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