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곡동 옛 반곡관설동사무소 부근에서 발견된 원삼국시대 집터. 집터 내부에 불에 탄 나무가 흩어져 있다. 집터 왼쪽 깨진 토기 조각이 높이 137cm의 대형 토기 항아리이다. 왼쪽 아래 사진은 집터에서 발견된 큰 토기 항아리들. 넓고 납작한 강돌로 뚜껑을 덮었다. (사진: 한강문화재연구원)

음식을 담고 곡식을 저장하는 토기는 풍요의 정도와 삶의 질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토기 외에 옷이나 세간살이, 기록이 전하지 않는 고대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도 특급 호텔이나 특정 계층에서 사용하는 금·은으로 장식된 그릇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으로 거래되지만, 역사시대 초기에는 그릇을 만든 재료보다 크기가 부의 상징이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와 본격적인 농업 활동을 시작했던 청동기시대가 지나면서 농업기술은 발전하고 생산량은 늘어났다. 역사시대의 여명기, 원삼국시대(철기시대 후기)에는 농업기술이 더욱 발전하였고 토기는 더욱 커졌다. 저장해야 할 곡물의 종류와 양이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원주 태장동에서 두 곳의 원삼국시대 도시유적이 발견된 후 원주천 중상류 지역인 반곡동에서도 원삼국시대의 도시유적이 발견되었다. 새로 발견된 유적은 2006년 3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혁신도시 건설에 앞서 시행된 문화재 발굴조사로 찾았다. 발굴조사는 한강문화재연구원에서 주도하였는데, 먼저 지표조사에서 유물을 확인한 13개 지점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9개 지점에서 유구를 확인하여 정밀 발굴조사로 이어졌다. 필자는 발굴조사 당시 지도위원으로 참여하여 조사의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반곡동에서 원삼국시대 도시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곳은 옛 반곡관설동사무소 남측, 원주천 제방과 인접한 지역인 혁신도시 남서쪽 끝 지점이다. 이곳은 혁신도시 안에서 발굴조사를 한 13곳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13지점으로 구분한 곳이다. 원주천의 범람으로 퇴적층이 쌓인 비옥한 충적지로 바다 수면보다 166m 높다.

이곳에서는 원삼국시대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청자와 수저, 조선시대 분청자기가 함께 발견되었고, 멀지 않은 8지점에서는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집터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석곽묘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곳 일대는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 전 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삶을 이어온 터전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원삼국시대 유적은 17동의 집터와 농사를 지었던 경작지, 토기를 묻은 구덩이들이다. 집터는 대체로 집의 전면인 출입 시설을 원주천 상류인 남동쪽으로 두고 현관을 돌출되게 설치한 凸자(4동)와 呂(13동)자 형태이며, 집의 평면은 네모꼴이 9동, 오각형이 7동이다. 집의 크기는 27.8㎡(8.4평)의 작은 집부터 121.6㎡(37평)에 이르는 큰 규모의 집까지 다양하게 발견되었다. 집터 안에서 발견된 시료를 가지고 연대를 측정한 결과 기원후 200년 초에서 200년 말의 유적으로 밝혀졌다.

집터 내부에는 바닥에 강돌을 깔고 진흙을 둘러 만든 화덕과 지붕을 지탱하고 벽의 뼈대가 되는 기둥을 박아 세운 구멍자리, 불에 탄 나무들이 발견되었다. 고운 모래 섞인 진흙이 다져진 바닥에는 크고 작은 온전한 토기와 깨진 토기 조각, 가락바퀴가 발견되었다. 토기 외에도 도끼, 작은 칼, 끝이 뾰족한 촉, 추 같은 철로 만든 도구들도 발견되었다. 

1,800년 전 농사를 지었던 경작지는 이랑과 고랑을 만든 지금의 밭과 같은 형태인데, 작물을 심기 위한 이랑을 만들고 이랑과 이랑 사이에 배수를 위한 고랑을 둔 것은 과거 마한사람들이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농사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반곡동 원삼국시대 유적에서 찾은 토기 중에는 높이가 어른 가슴 높이인 137cm 정도 되는 대형의 것도 있다. 대형 토기 외에도 1m 내외의 큰 항아리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 토기들은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전 시기보다 훨씬 저장할 곡식이 많았음을 집터에서 발견된 토기로 알 수 있다.

크기가 큰 저장용 토기와 함께 밥그릇, 대접, 잔, 동이 모양의 토기들도 발견되었는데 저장용 토기보다 작은 토기들은 음식을 담아 불에 가열하여 조리하거나, 음식을 담기 위한 식기나 술잔으로 쓰였을 것이다. 식기 외에도 토기 바닥에 구멍이 뚫린 시루도 발견되었는데, 농사지은 곡물로 떡을 쪄 먹기도 했으니 이 역시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다.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큰 토기 항아리와 시루를 비롯한 음식을 만들기 위한 여러 형태의 조리용 토기, 밥과 반찬을 담았던 식기용 토기들은 기원후 200년 무렵 마한사람들의 풍요를 말해준다. 그러나 1,800년 전 풍요로운 반곡동의 도시유적은 화재로 사라졌다. 실화인지 방화인지 혹은 전쟁 때문인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17동의 집터 중 10동의 집터 안에 남아 있는 불에 탄 나무는 집이 쓰러진 이유가 화재임을 알려준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