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둔초교 창평분교에 자리잡은 '할매발전소'는 고령자가 예술 생산자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을 이끌어내며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소통 단절은 도심보다 농촌의 노인들에게 더욱 깊은 고립감을 안겼다. 품앗이로 농사를 짓고, 경로당에 모여 따뜻한 밥 한 끼 또는 화투를 치는 소소한 즐거움마저 빼앗긴 시골 노인들은 무력감 그 자체였다. 

생의 에너지를 전하는 '할매발전소'는 '할머니'가 겪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고립과 단절을 마주한 데서 시작한다. 늘 쾌활하고 에너지 넘쳤던 할머니가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TV만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2~3시간을 가만히 움직임 없이 앉아있는 모습이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는 심지혜 씨는 할머니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심 씨가 소속된 로컬리티(김영채, 석양정, 심지혜)는 농촌의 무력한 노인들을 해결과제가 아닌 존재 자체로 바라보는 방법으로 공공예술에서 답을 찾았다. 노인이 예술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을 이끌어내며, 글을 배우지 못해 어떤 기록도 남길 수 없었던 신림면 할머니들의 삶에 서사를 부여해, 젊은 아티스트들과 마지막 구술 세대가 될 할머니의 기록을 예술로 남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글을 배우고 싶었던 할머니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여한의 공간이었던 학교가 이들의 거점 장소가 됐다. 1949년 개교해 1998년 폐교된 황둔초등학교 창평분교를 '할매발전소'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조성하고 할머니 9명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할매발전소'는 유휴 공간을 활용해 지역의 새로움 숨을 불어 넣어주고, 고령자가 예술 생산자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을 이끌어내는 공간이다.

앞서 '할머니의 잘 지는 밥상' 다큐를 통해 할머니들의 솜씨가 담긴 영상이 큰 인기를 끌면서 할머니들과 대면하고 싶은 대중들의 욕구를 반영해 이번에는 할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은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를 기획했다.

오는 11월 27일까지 금·토·일마다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직접 할머니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춤 수업을 진행하는 등 대면을 통해 얻은 영감으로 작품을 구상했다. 노인 세대의 콜라텍과 젊은 세대의 사일런트 디스코를 접목한 무도장 컨셉의 전시와 할머니가 살아온 고된 세월을 금줄이나, 담벼락의 주름, 팔각모반을 활용한 라푼젤 등으로 형상화 한 다원예술도 눈길을 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서월이 할머니는 "학교 바로 앞에서 수 십년을 살면서 자식들을 모두 이 학교로 보냈지만 정작 난 학교에서 글도 배울 수 없었다"며 "애증이자 부러움의 공간이었던 학교에서 늦게나마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로컬리티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할머니가 매개가 되는 다양한 기획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는 할머니가 단순한 예술의 영감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행위자가 될 수 있도록 춤 공연이나 전시 참여자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함께 할머니들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다큐 영상도 꾸준히 제작할 예정이다. 

심지혜 씨는 "내년에는 더 많은 할머니들과 할매발전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마지막 구술세대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아내고 싶다"며 "이러한 활동들이 쌓여 최종적으로는 할머니들을 보러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방문자에게 할머니들이 직접 전시를 설명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