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막리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 전경. 체육공원 북쪽 끝 부분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됐다.

문막읍은 산이 많은 강원도에서 보기 드물게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강원도에서 철원 다음으로 넓은 평야 지대이다. 또한, 섬강이 들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어 농사짓기 좋은 강원도의 곡창이다. 들이 넓을 뿐만 아니라 관동의 관문으로 경기지역과 인접해 있어 문막 사람들의 기질은 산간 지역 사람들과 다르게 자부심이 강하고 진취적이다. 

원주가 속한 중부지역은 봄 가뭄에 이어 장마가 길고 근래에 보기 드문 집중호우로 크고 작은 수해 피해가 이어졌다. 기복이 심했던 여름이 가고 추석이 다가온다. 추수를 앞둔 3천 년 전 문막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의 일상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없고, 너무 오랜 일이라 입으로 전해오던 이야기는 바람과 섬강 물소리에 흩어져 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원주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거나 찾으려 애쓴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지난 2010년 2월 아무도 몰랐던 문막리 강변에서 3천 년 동안 땅속에 묻혀들어 있던 문막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찾았다. 3천 년 전 문막 사람들을 깨운 것은 한강문화재연구원의 젊은 고고학도들과 그들을 도와 삽을 들었던 나이 많은 인부들이었다. 그해 2월에 시작해서 10월까지 이어진 문화재발굴조사로 섬강가에 살았던 3천 년 전 문막리 마을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3천 년 전 문막리 마을을 발견한 문화재 발굴조사는 4대강 정비사업이 계기가 되었다. 4대강 사업은 청계천 복원으로 서울 시민에게 큰 박수를 받은 이명박 전직 대통령의 공약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수운으로 연결하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반대 여론이 거세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모래를 준설하고 보와 자전거길을 만드는 4대강 정비사업으로 변경한 것이다. 4대강 사업은 건설회사 사장 출신 대통령의 지휘로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전국의 문화재 조사기관이 총동원되어 4대강 사업 지역의 문화재발굴조사에 투입되었는데 문막리 청동기 마을도 그렇게 발견된 것이다.

문막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적에서는 모두 18호의 집터가 발견되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대개 2∼5동의 집터가 발견되는 신석기시대에 비하면 큰 발전이다. 문막리 청동기 마을은 현재 섬강 둔치 체육공원 북쪽에 있으니 섬강과 인접해 있는 강변 마을이다. 문막리 청동기 마을이 발견된 곳은 고운 모래땅으로 횡성에서 발원한 섬강이 실어 나른 비옥한 퇴적층이어서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다. 

문막리 청동기 마을 유적에서는 농기구와 간석기,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반달돌칼과 땅을 파고 고르기 위한 고무래(나무로 만든 괭이)는 발달된 농업기술을 알 수 있다. 농업 도구 외에도 물고기를 잡기 위한 어망추도 발견되어 그들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다. 섬강의 풍부한 물고기들이 3천 년 전 문막 사람들에게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그물추 한두 개가 유적 여기저기에서 흩어진 채로 발견되는데 문막리 청동기 유적에서는 40개의 흙으로 납작하게 빚은 그물추가 토기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온전한 형태의 그물이 삭아 없어지고 추만 남은 것으로 짐작된다.

문막리 청동기 사람들이 남긴 유물 중 특별한 것은 돌을 갈아서 만든 석기들이다. 대부분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석기들은 완성품이 대부분이다. 문막리 유적에서는 도구를 만들기 위한 돌감에서부터 적당한 크기로 할석한 것, 반쯤 가공한 것 그리고 완성된 석기가 모두 발견되었다. 또한, 석기를 가공하기 위한 갈판과 돌을 쪼개기 위한 모루 돌 형태의 돌이 발견되어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석기를 만드는 전 과정을 알 수 있다.  

또한, 18호의 집터 중 두 곳의 집터에서 석기를 만들기 좋은 하나의 판석이 서로 나누어 져 발견되었는데, 이는 도구를 만들기 적당한 돌을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썼음을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무엇을 만들거나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할 때 도구가 중요한데 좋은 도구를 만들기 위하여 석기의 재료인 돌을 나누어 썼던 것이다. 

▲ 불에 탄 집터 내부. 가장 자리에 불에 탄 나무기둥이 보인다.

3천 년 전 섬강 옆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청동기시대 마을에 있던 집터 중 규모가 큰집은 35㎡ 정도이고 15∼20㎡ 정도의 집이 대부분인데, 8㎡ 정도 되는 작은 집도 1동 발견되었다. 집의 평면은 네모꼴로 전부 방의 구획이 없는 원룸 구조이다. 집터 내부에는 불을 피운 흔적과 여러 종류의 석기와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소월의 서정 넘치는 시속 풍경처럼 살았던 3천 년 전 문막 섬강변 마을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느 날 마을 한집에서 시작된 불길이 마을 전체로 번졌다. 집터에서 발견된 불에 타 쓰러진 숯으로 남은 기둥이 그날의 화재를 말해준다.    

발굴조사가 끝나고 문막리 유적은 흙으로 되 덮어 잘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되 덮은 유적 위에는 연산홍 화단과 자전거길이 조성되었다. 강원도의 곡창이자 최대의 공업단지가 들어선 문막은 지금 연산홍 꽃밭 아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