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막읍 궁촌리 서들 유적. 돌칼은 밭 가운데 경로당 부근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에는 지금의 경로당이 건립된 곳과 연결된 밭이었다.

돌에서 동을 분리하고 주석과 합금하는 방법을 찾아낸, 당시로는 첨단 기술을 발견한 인류의 첫 과학자 청동기시대 장인들은 칼-용도에 따라 도(刀)와 검(劍)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글에서는 도와 검을 아우른다. 그들이 만든 돌칼은 정교하고 아름다워 무기가 아니라 때로는 예술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지구상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모두 훌륭한 칼을 남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에 정착한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칼의 시대'로 불러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돌과 청동으로 만든 아름다운 칼을 남겼다.

현대인들에게 칼은 전쟁에서 살상용으로 쓰이는 무기나, 육류 따위의 음식 재료를 써는 도구로 생각하지만 청동기시대의 칼은 날카로운 도구의 기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공을 들여 만든 칼을 살펴보면 칼의 쓰임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청동기시대의 칼은 무기로 쓸 만큼 강도가 강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무기로 쓰기에는 약한 무른 재질의 돌감으로 만든 칼이 많이 발견된다. 형태 또한 무엇을 베고 찌르기 위한 실용적인 것보다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장식적인 칼이 더 많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칼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칼을 가진 자들은 부와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반인들은 생산에 필요한 도구가 요긴했지만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드러낼 표식이 필요했다. 사람의 영혼을 통제하는 제사장의 역할과 부족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권위의 상징으로 칼을 들었다. 

물론 칼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교한 조각으로 표면을 장식한 청동으로 만든 잔무늬거울과 여덟 개의 방울이 달린 청동 탬버린, 팔주령도 위엄을 나타내는 도구였다.              
원주에서 청동기시대의 돌칼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73년 4월 문막읍 궁촌리 서들 마을이다. 문막에서 섬강을 따라가다 포진리에서 섬강과 합류하는 궁촌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궁촌리가 있다. 

궁촌리는 마을 동쪽과 서쪽이 해발 400∼500m 높이의 산들이 둘러싸여 있고 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마을을 관통하여 흐르는 궁촌천 양옆에 너른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궁촌천과 섬강이 만나는 포진리에서 문막 평야와 연결된다. 궁촌천 건너편 포진리에는 견훤산성이 있다. 마을 이름 궁촌은 고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경우궁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궁말(宮村)이라 한다. 간돌칼이 발견된 곳은 섬강과 2.9㎞ 정도 떨어진 궁촌2리 서들 마을이다. 

대개의 역사적인 발견이나 사건이 우연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궁촌리 서들 마을에서 청동기시대 돌칼이 발견된 것도 우연이었다. 8월 24일 유물을 발견하게 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하여 서들 마을을 방문하였다. 당시 유물을 신고한 신한승 씨의 아들 신종국 씨로부터 유물을 발견한 내막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신종국 씨는 1957년 생으로 그의 아버지가 유물을 발견할 당시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고 한다. 유물을 발견한 그의 부친은 1924생으로 1988년 작고하셨다.

서들 마을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신한승 씨는 밭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돌맹이가 농사에 걸림돌이 되었다. 농사에 지장을 주는 돌맹이를 캐내려고 주위를 팠더니 돌의 크기가 생각보다 컸다. '빙산의 일각'처럼 돌은 밭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커서 움직일 수 없는 크기였다. 

농부는 몰랐지만 고인돌의 덮게돌이었으니 인력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한승 씨는 이내 돌을 캐내려던 생각을 버리고 가을에 수확한 무를 겨우내 저장하기 위한 '무광'을 만들기로 했다. 바위를 지붕삼아 바위 밑에 적당한 크기의 구덩이를 파면 무를 저장하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곡괭이와 삽으로 한참을 땀 흘려 바위 밑을 팠더니 잔자갈돌이 깔려있고 자갈돌 위에서 44.3cm 크기의 점판암으로 만든 간돌칼과 반달돌칼, 5개의 화살촉을 발견했다. 신한승 씨는 곧 원주군청에 신고했고, 원주군에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보고하고 유물을 이관했다. 

무광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팠고, 신고했으니 도굴은 아니고 농부에 의한 문화재 발굴이 된 셈이다. 물론 과학적인 조사가 아니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수 천 년 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던 무덤의 유물이 농부의 손으로 온전하게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아쉬운 것은 유물 발견 신고를 접수한 문화재관리 당국이 즉시 긴급 발굴조사 등 유적에 대한 보호조치를 소홀히 한 것이다.   

▲ 문막읍 궁촌리 서들 유적에서 발견된 긴돌칼, 반달돌칼, 화살촉.

문막읍 궁촌리 서들에서 발견된 돌칼을 비롯한 7점의 유물들은 나라밖에 한국의 청동기 문화를 알리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2001년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알려진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한국관이 설치되었는데 그곳에 한국을 대표하는 유물로 선정되어 5천 년 역사의 증거로 전시된 것이다. 지금 대영박물관에는 원주의 철불이 파견되어 국위를 선양하고 계신다.

궁촌리 서들 유적에서 발견된 돌칼 외에도 1978년 육민관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또 하나의 돌칼이 발견되었다. 당시 학교에 재직하던 교사가 발견한 것으로 역시 무덤(고인돌)의 부장품으로 생각된다. 

육민관고등학교는 매지천과 멀지 않은 언덕에 위치해서 청동기시대 유적이 자리잡기 좋은 곳이다. 궁촌리 돌칼처럼 완형은 아니고 끝부분이 1/3정도 부러져 남은 칼의 길이가 23cm 크기이다. 무른 석재로 만든 흥업리 돌칼은 전체적으로 미색을 띠고 있는데 칼의 중심부에 길이 방향으로 검은색 돌의 결을 잘 살려 미적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