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처음 알려진 노림리 고인돌. 고인돌 뒤 학교는 옛 노림초교이다.

45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하고 첫 번째 인류가 등장한 이래, 오랜 기간 동안 지구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새로운 땅을 찾아 여행했던 방랑자 구석기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뒤를 이어 한곳에 머물러 살기 시작했던 신석기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문명 청동기시대가 시작된다. 

석기시대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한반도의 경우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대략 70만 년 전이다. 이후 1만 년 전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까지 69만 년 동안 지구의 주인공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이었으니 인류역사상 가장 길었던 시기이다. 구석기시대는 시간의 길이로 따지면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혁신적인 기술의 진보는 없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 뒤를 이어 등장한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혁신가들이었다. 수렵, 채집과 더불어 농사를 시작하고 한곳에 머물러 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하였으며, 돌을 갈아서 정교하게 만든 도구와 그릇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실을 뽑아 옷감을 짜고 뼈로 만든 바늘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조개를 다듬어 만든 장신구로 치장을 하기까지 했으니 '패션의 시작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69만 년 동안의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청동기시대가 시작되기 전 1만 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인류 문화에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기술적인 진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다. 우리가 흔히 선사시대라고 하면 문명 이전 야만의 시기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청동기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야만이 아니라 현대문명의 기초를 다진 사람들이다.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와 서까래를 사용한 오늘날과 같은 건축기술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발명품이다.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사용하기 전까지 인류의 건축기술은 청동기시대의 건축기술을 토대로 발전한 것이다. 

돌에서 금속(동)을 분리하여 도구를 만든 일은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과 비교될 만한 혁신적인 일이었다. 성분이 다른 동과 주석을 섞어 만든 합금, 청동을 발명한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시작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청동검과 거울을 만들기에 적합한 동과 주석의 비율을 알아낸 청동기시대 장인들은 고대의 연금술사와 스테인리스와 알루미늄을 발명한 현대의 과학자로 이어지는 계보의 첫머리에 자리한다.

농업 기술도 발전하여 청동기시대에는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시작하였고 먹고 남을 정도로 농업 생산량도 늘었다. 인구는 증가하였고 마을 규모도 커졌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터를 잡았던 강과 가까운 마을뿐만 아니라 조금 더 높은 언덕에도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마을이 들어섰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앞선 구석기와 신석기시대 사람들보다 더 많은 흔적을 남겼다. 농업의 발달로 인구가 증가하였고 마을 규모가 커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남긴 유적은 앞선 석기시대 유적처럼 땅속 깊숙이 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우뚝하게 남아서 찾기도 수월하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 고인돌이다.

원주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처음 알려진 것은 노림리 고인돌이다. 노림리 고인돌은 부론면 노림리, 지금은 폐교가 된 옛 노림초교 앞에 있다. 노림초교 앞을 지나는 문막과 부론을 연결하는 지방도 가운데 서 있는 두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 둥치 사이에 고인돌의 덮개돌이 얹혀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큰길 가운데 있어 쉽게 눈에 띄는 곳이다. 애초에 고인돌이 있던 곳에 느티나무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크게 자라 고인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마을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노림초교를 세울 때 운동장 부근에도 큰 돌 두 개가 더 있어 마을 사람들이 삼형제 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두 개의 바위도 고인돌로 짐작된다.

고인돌의 덮개돌 크기는 230×167×47㎝이며, 무게는 약 3.5톤 정도로 추정된다. 윗면에는 20여 개의 둥근 구멍(性穴)이 파여져 있는데 큰 구멍의 크기는 지름 10㎝, 깊이 3㎝ 정도이다. 고인돌 주변에서 민무늬토기 파편 3점이 채집되었다. 

어른 한 사람이 70kg을 들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3.5톤의 고인돌을 움직이려면 어린아이와 여성을 제외하고 건장한 남성 50명이 동원되어야 한다. 노림리 고인돌에 장례를 지냈던 청동기시대 노림리 마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고인돌이 있는 마을 이름 노림(魯林)은 주민들이 '노숲'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중국 노나라에서 가져다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인돌이 있는 2차선 지방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이곳 일대가 느티나무 숲이었다고 한다. 노림리는 실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구암 한백겸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청주한씨 세거지 이기도 하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