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너무나 먼 시기에 살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흔적은 그리 많지 않다. 시기적으로 멀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지층의 변화와 퇴적으로 땅속 깊숙이 묻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역사시대의 유적 발견은 기록이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선사시대의 유적은 어떤 기록도 없다. 때문에 선사 고고학자들은 구석기 시대의 흔적을 찾기 위하여 그들이 살았을 법한 지역을 끊임없이 탐문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 발굴조사 전 지정면 신평리 구석기 유적. 왼쪽 건물은 천주교 신평리공소이며, 오른쪽은 중앙고속도로이다.

원주에서 구석기 시대의 흔적을 처음 찾은 것은 1996년이다. 원주시에서 시행한 '원주의 역사와 문화유적' 조사 용역 중 선사시대를 맡은 강원대학교 최복규 교수가 이끄는 조사팀이 지표조사를 통하여 지정면 월송리와 안창리, 부론면 홍호리와 법천3리 좀재 마을에서 구석기 유물을 찾았다. 하지만 지표에서 찾은 단편적인 유물만으로 원주의 구석기시대 성격을 파악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원주에서 발굴조사로 구석기 유적을 찾은 것은 2000년 이후이다. 한반도의 중심부, 남한강과 섬강 유역에 위치하여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이동 통로로 여겨졌던 지리적 여건에 비하면 원주의 구석기 유적 발견은 다른 지역보다 늦은 편이다. 

2007년에 흥업면 매지리에서 아파트 공사에 앞서 시행된 시굴 조사에서 석기 18점을 찾았다. 흥업리 유적은 매지천에서 350m 거리에 있다. 2012년에는 두 곳에서 구석기 유적을 찾았다. 지정면 월송2리 송호동에서 원주기업도시 진입로 확장 공사를 위한 발굴조사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2개의 지층에서 346점의 구석기 유물을 찾았다.

송호동 유적 남서쪽 300m 지점에 섬강이  흐르고 있다. 이어서 지정면 신평리에서 광주∼원주고속도로 공사를 위한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770점의 구석기 유물을 찾았다. 이 유적에서 찾은 유물 중 눈에 띄는 것은 흑요석 12점이다. 2013년에는 지정면 보통리에서 중앙선 원주∼제천 복선 철도 공사와 자동차 매매단지 조성을 위한 발굴조사에서 각각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었다.

두 곳에서 1천740여점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다. 보통리 유적은 섬강으로 흘러드는 서곡천과 140여m 떨어져있다. 2014년에는 무실동 중앙선 원주∼제천 구간인 서원주역 부지에서 100여점의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알려진 5곳의 구석기 유적 중 과학적인 조사로 절대연대가 밝혀진 곳은 송호동과 신평리 유적 두 곳이다. 송호동 유적은 2개의 지층에서 각각 3만2천 년 전과 9천500년 무렵으로, 신평리 유적은 대략 2만 년 전 유적으로 밝혀졌다. 구석기 연구자들은 절대 연대를 가진 두 곳의 유적 외에 다른 3곳의 유적도 유물이 포함된 지층을 비교 연구한 결과 대체로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금까지 원주에서 발굴조사로 찾은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대부분 석영으로 만든 것이다. 석영은 원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이니 구석기 사람들이 현지에서 찾기 쉬운 돌감으로 석기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정면 송호동 유적에서 발견된 응회암, 사암, 쉐일과 신평리 유적에서 찾은 흑요석은 원주에서 구하기 어려운 암석이다. 이것은 구석기인의 이동과 교류를 일러준다. 

▲ 신평리 유적에서 찾은 흑요석으로 만든 칼.

특히 신평리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은 화산지대 같은 특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광물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우리나라는 백두산 한곳이고, 일본은 규슈 사가현 고시다케와 홋카이도의 시라타키 정도이다. 흑요석 산지가 특정지역에 제한되어 있는 희귀한 암석이어서 흑요석으로 만든 구석기 출토 유적도 흔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울주와 부산, 통영, 장흥 등 동남해안에 위치한  7곳의 유적, 공주 석장리 그리고 강원도에서 7곳의 유적에서 흑요석 석기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늦은 구석기시대 흑요석의 발견은 수 십 만년 동안 이어온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에서 놀랄만한 기술적 발전을 가져왔다. 자연에서 얻은 유리, 흑요석은 날카롭고 가공이 쉬워서 새로운 형태의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흑요석제 도구는 섬세한 새김이 가능해서 보다 정교한 작업이 가능했으니 재능 있는 구석기 사람은 예술품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큰 힘보다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해서 지능 향상에도 기여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반도체가 인류문명의 전환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흑요석은 구석기시대의 반도체이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