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C 통합, 딱 반년밖에 시간 없는데… 
5개 지역농협 찬성…나머지 한 곳, 조건부 찬성 
문막농협 "통합 후 적자분에 대한 보완책 필요"
조건 충족돼야 통합할 듯…불발되면 피해 막대 

"농민과 조합원을 위한 통합이 되어야지 시장 논리대로 통합해서는 안 된다." 올해 말까지 원주에서 RPC(미곡처리장) 통합법인을 설립해야 정부가 시설지원을 하겠다고 나온 상황. 한 시라도 통합을 서둘러야 하는 시기에 문막농협 한창진 조합장은 이렇게 말했다. 상황이 급하다고 명분 없이 통합을 서두르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이다. 

RPC 통합은 현 지역농업계의 최대 이슈다. 정부가 내년부터 RPC 통합법인에만 벼 가공시설 현대화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 이에 미곡처리장과 벼건조저장시설을 운영하는 문막, 원주, 남원주·신림·판부, 소초농협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면 매년 수억 원에 달하는 벼 도정·건조시설 유지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5개 농협은 통합법인 설립에 찬성했지만, 문막농협은 조건부 찬성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말 RPC 통합에 따른 컨설팅을 끝마쳤는데도 무작정 통합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 통합 마감 시간이 6개월도 안 남은 상황이라 다른 농협들은 속이 타고 있다. 

문막농협이 내세우는 조건은 개별농협에 대한 적자 해소방안이다. 통합법인이 쌀을 팔아 수익을 남기면 다행이지만 적자가 발생하면 이를 만회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문막농협의 경우 다른 농협보다 훨씬 많은 벼를 수매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치명적인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 했다.

"모든 농협이 조합원 때문에 지금보다 수매가를 내리긴 어렵다"는 한창진 조합장은 "통합법인이 출범해도 벼값을 상향 평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경우 쌀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원주 6개 지역농협은 40㎏(특등) 벼 한 포당 7만1천 원에서 7만4천 원에 수매했다. 원주농협이 7만4천 원으로 수매가를 가장 높게 책정했고 문막농협(7만2천 원), 소초농협(7만1천 원), 남원주·판부·신림(7만1천 원·1등급) 순으로 차이가 났다. 그런데 시장 논리대로 벼 수매가를 책정하게 되면 현행보다 2만 원가량은 낮춰야 한다.

문막농협은 RPC 통합법인이 출범해도 농민 반발에 따라 전년 수준으로 수매가를 동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6개 농협 중 가장 많이 가격을 지급하는 쪽으로 수매가가 상향평준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원가 상승은 불가피하고 소비자가격도 올라가 토토미 판매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각 농협이 지금 보는 적자 규모보다 더 큰 적자를 떠안게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한창진 조합장은 "5개 농협은 수매량(총 6천 톤)이 얼마 안 되니 벼값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주고, 올라가면 올라가는 대로 주면 된다"면서도 "근데 우리(7천 톤)는 쌀이 절대적으로 많다 보니 시장 논리대로 줬다간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문막농협이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은 농민들이 수매가 하락을 못 견뎌 하기 때문이다. 한창진 조합장은 "몇 년 전에 쌀이 남아돌아 수매가격을 하락한 적이 있다"며 "벼값이 떨어지면 정부에서 직불금을 더 주고 원주시에서도 건조료도 지원해줘 결과적으로는 조합원 통장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업인들은 '직불금은 정부에서 주는 거고 건조료는 시에서 주는 것인데 떨어진 수매가에 대한 대책을 농협이 내놔야 한다'고 압박했다"며 "RPC 통합 문제는 단순히 시장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섯 개 농협이 정부 방침에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한창진 조합장은 "RPC 사업은 원래 정부에서 하던 일인데 농협이 강제로 떠안고 적자를 보며 운영하고 있다"며 "농협들이 사업을 중단하고 못 한다고 선언하면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RPC를 운영하는 대다수 농협이 통합 문제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이 문제는 임기 8개월 남은 현 조합장들이 아니라 내년에 선출되는 차기 조합장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창진 조합장은 지금 당장 RPC 통합법인을 만드는 것보다, 통합법인 출범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특정 농협 적자 해소방안 마련 힘들어"
그러나 한창진 조합장의 주장대로 문막농협의 적자 해소방안을 별도로 마련하긴 힘들어 보인다. RPC 통합법인이 문막농협에 특혜를 주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B농협 관계자는 "RPC 통합 문제에 가장 목마른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문막농협"이라며 "다른 농협이야 통합이 되건 안되건 쌀 판매하는 데는 크게 문제 없다"고 말했다. 

C농협 관계자도 "문막농협이 우려하는 적자 해소방안은 통합법인을 설립하고 찾아도 충분하다"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원주 전체 농협이 피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부도 RPC 통합법인을 위해 특별 지원을 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원주시 관계자는 "그동안 농협들이 조합원에게 경쟁적으로 수매가를 높게 줘 왔다"며 "통합법인 출범 후 발생하는 적자분을 정부나 지자체가 왜 지원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올해 RPC 통합이 물 건너가면 1차적으로는 쌀 가공시설(RPC·DSC)을 가진 농협들이 피해를 본다. 그동안 정부로부터 받아 왔던 수억 원 규모의 시설지원을 못 받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쌀값도 지난해보다 낮아진 상태다. 수매가격은 높게 지급했는데 시중가는 떨어지니 역대급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

문막농협 한 조합원은 "쌀 판매 자체로도 적자가 발생하는 데 내년에 정부 지원을 못 받게 되면 농협이 떠안게 될 적자 폭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인 피해는 농민에게 돌아간다. 지역농협들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쌀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 안 그래도 '원주 쌀 비싸다'라는 소리를 듣는 터라 쌀 판매가 더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는 농협들이 쌀 산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구실이 돼 쌀 재배 농업인의 생계를 위협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창진 조합장은 RPC 통합 문제를 두고 농민 단체와 지역농협이 한자리에 모여 대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