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 온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박경리문학공원을 산책하다가 그림책전문작은도서관 패랭이꽃그림책버스를 만났다. 아직 그림책의 그림과 삽화를 구별할 줄 몰랐으면서도 그림책의 그림이 품은 아름다움과 깊이에 당혹스러울 만큼 매혹을 느꼈다.

 물론 나뿐 아니라 어린 딸에게도 다정한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림책의 독자가 0세부터 100세까지라고 하는 말은, 오래전 봄날, 패랭이꽃그림책버스의 서가에 나란히 기대어 앉아 그림책을 읽던 우리 모녀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덟 살 어린이와 서른여덟 살 엄마는 각자 그림책 서가를 훑으며 자기가 이끌리는 그림책을 찾았고, 나란히 앉아 자기의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즐기고 공부하면서 줄곧 느끼는 것은,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읽어줄 때 감동이 훨씬 커진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와 그림책>의 저자 마쓰이 다다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책을 어린이에게 읽어주는 행위는, 어른과 아이가 정신적으로 손을 잡고 떠나는 신비한 여행입니다. 어른과 어린이가 정신적 체험을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림책을 정성껏 읽어주어서 어린이가 귀 기울여 듣는다면, 두 사람 사이에는 풍부한 공감과 기쁨이 생겨 납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따사로움과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그림책이 존재해야 할 의미라고 확언하고 싶습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림책의 독자는 유아에서 노인에 이르는 모든 연령이지만, 대부분의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를 배려하여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그림책 편집을 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어린이 독자의 시선으로 장면을 보는 일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눈으로 장면을 보기란 언제나 어렵기만 하다. 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그림책 편집자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수상하면서 온 국민과 그림책 동네에 큰 기쁨을 안겨준 이수지 작가는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작가지만 언제나 어린이를 중심에 두는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위원회(KBBY)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2)부터 아이의 현실과 환상 세계를 책의 물성을 토대로 꾸준히 탐구한 작가", "주로 여자아이를 작품에 등장시켜 세계를 탐험하는 주체로서 여성을 작품에 표현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백 번째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다. 1923년,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색동회 회원들에 의해 제정된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것이다. 1923년 5월 1일 열렸던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방정환 선생은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어린이에 대한 존중을 부탁했다고 한다.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날'은 어린이라는 세대를 발견하고 보호하고 일으켜 세우는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어린이를 존중하기 위해 먼저 어린이라는 세대를 올바로 발견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100년 전 어린이날을 만들었던 어른들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그의 말대로 "어린이에게는 어른이 환경이고 세계"이다.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 좋은 방법 중에 '그림책 함께 읽기'가 있다. 그림책을 읽어주기 힘들면 원주시그림책센터로 오면 된다. 그림책센터 1층 그림책 아카이브에서는 일요일,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 아침마다 그림책을 함께 읽는 '아침을 여는 그림책'을 운영 중이다. "어른과 아이가 정신적으로 손을 잡고 떠나는 신비한 여행"이 가능한지, 얼마나 멀리 함께 갈 수 있는지 경험해보시길 권한다.

박향선 원주시그림책센터 일상예술 출판부 선임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