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에 상지대에서 지학순 주교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있었다. 원주 생명·협동운동의 정신적·물질적 지주였던 그분의 삶을 기억하고 전승해 보자는 취지였다. 행사 끝나고 나오는데 어떤 젊은 분이 발제를 맡았던 제게 물으셨다. "지금도 원주는 협동조합 운동의 메카입니까?" 이 화두에 대해 원주 사람들 생각의 스펙트럼은 최소한 세 갈래는 될 것 같다.

 1960~80년대에는 절대빈곤과 재해, 부조리 등으로 인한 절박한 생존문제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풀어냈다. 또한, 평화와 정의의 가톨리시즘, 민주화 및 사회변혁 운동, 생명·협동을 중시하던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을 정신적 지주로 해서 생명·협동운동으로 승화시켰다. 사람과 자연을 중시하다보니 신협과 생협이 발상되었을 것이다. 그 유산은 지금도 원주에 그대로 남아 있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는 다시 지역 공동체에 절박한 시련을 안겨 주었다. 정부는 사회문제 해결을 협동조합 원리에다 영리기업의 경영시스템을 결합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 와중에도 원주 생명·협동운동 진영은 2002년 '협동조합 간 협동'의 산물인 원주의료생협의 설립, 2003년 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결성하였다. 리더십 빈곤, 신자유주의 대응 방안 등을 위해 협동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것이다.

 그러다가 2007년 사회적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일부 생협들도 사회적 기업으로 조직형태 전환을 통하여 정책 사업을 병행하였다. 2013년에는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였다. 결국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기업이 '따로 또 같이' 동행을 하게 되었다. 사업은 늘고 운동은 줄었다.

 그렇다면 원주는 사회적경제의 메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원주에는 280여 개의 사회적경제기업이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원주보다 인구가 적은 춘천의 사회적경제기업 수가 원주보다 더 많다. 신생 협동조합의 경우도 춘천이 원주보다 훨씬 더 많다.

 정량지표는 그렇지만 질적 성숙도나 내실 지표는 다르니 평가는 유보하기로 한다. 원주는 사회적경제에 관한한 춘천이나 완주 등 다른 시군으로 벤치마킹을 가야 할 형편이다. 이들 시군에는 전담조직인 사회적경제과가 있어서 사회적경제기업을 집중 육성한 결과라고 본다.

 원주는 지금이라도 중간지원조직의 전문성을 보강하여 현장 기업들을 밀착 지원하고, 갈등관리 등을 위한 협의기구 역할을 잘하여 질적 성숙도를 높여야 한다. (사협)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원주 생명·협동운동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2023년에 창립 20주년이 된다.

 사람으로 치면 곧 성인이 되는 셈이다. 이제 과거의 유산에 편승, 정부 지원 의존, 정파적 세력화, 규모화 영리기업 추종 등의 노선들이 원주다운 것인지 숙의해야 할 때이다. 네트워크 조직을 만든 배경을 되새겨 보자. 약과 독은 같은 것이다. 외부 환경 변동에 흔들림 없이 자치·자립 노선을 지키는 것이 이 부문의 생존과 지속을 위한 안전장치이다. 선진 협동조직들 성패 사례의 교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조직이나 기업의 설립 때부터 자생력을 갖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념적으로나 경영 측면에서 역량을 키워주는 연구와 학습 노력이 중요하다. 둘째, 기존 협동조합들과 사회적경제기업들 간의 협동 플랫폼을 확장하여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운동 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직들이 힘겹게 창출한 다양한 사회적 가치에 대해 시민들과 투자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 자생력의 기반이 된다. 셋째, 협동운동의 좌표를 재점검해 볼 때이다.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새로운 절박함, 사회문제 요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기후위기, 지방소멸, 제4차 산업혁명, 각종 감염병의 상존과 같은 문명 전환기적 현상들일 것이다.

 이에 대규모 영리기업들도 변하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이나 사회적경제 사업도 다시 시민들과 함께 급변하는 시대정신, 시대가치를 바탕으로 치열하게 생명·협동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협동조합 운동의 메카였던 원주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길이다. 이것이 원주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최덕천 상지대학교 교수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