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감영 후원 관풍각과 채약오.

조선시대 감영의 주인공은 관찰사였다. 지방에서 행정권은 물론이고 사법권과 군사권마저 장악하고 있었던 막강한 관찰사는 감영을 근거지로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죄인을 다스리고, 인재를 가려 뽑고, 지방군을 지휘했다. 

관찰사가 머물러 지방 행정을 총괄하던 감영은 백성들이 쉽게 드나들던 공간이 아니었다. 관찰사를 만나려면 포정루, 중삼문, 내삼문을 지날 때마다 신원과 방문 목적을 소상히 밝혀 허락을 받아야 했다. 군역과 요역의 대상자로 동원되어 들어오거나, 죄를 지어 붙잡혀 들어오는 일이 아니면,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간절하다 해도 뚜벅뚜벅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1895년 강원감영이 폐지된 후 감영 공간은 원주 진위대 본부, 일제 헌병대 분견소, 6.25 전쟁 시기 강원도청을 거쳐 원성군청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면서 관찰사가 주인공이었던 공간의 의미는 점차 퇴색되었다. 

강원감영이 폐지된 지 100년째 되는 해가 1995년이었다. 강원감영 복원 사업이 폐지 100주년 만에 시작되었다. 먼저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과 포정루, 내삼문, 중삼문, 행각, 청운당 등 주요 건물이 복원되었다. 이후 원주우체국을 철거하고 후원 복원이 시작되어 발굴과 고증을 거쳐 2018년 후원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23년 동안 이어진 복원 공사였다. 

1895년 강원감영 폐지 후 다양한 용도로 활용
전통은 현재 삶과 숨결 가미될 때 생명력 가져

복원된 강원감영은 시민들에게 개방적인 공간이 되었다. 포정루, 중삼문, 내삼문을 지날 때 신원을 조사하는 포졸도 없고, 눈 부라리며 무슨 용무로 오는 거냐고 다그치는 아전도 없다. 임기 끝나고 떠나가는 관찰사 그냥 보낼 수 없으니 선정비 세울 비용이 필요하다고 추렴하는 야차 같은 관리도 없고, 세워진 선정비 몰래 걷어차며 분풀이하는 사람도 없다. 언제나 마음 내키는 대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관찰사가 집무하던 선화당 마루에 올라 앉아 관찰사인 양 폼 잡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 영주관 야경.

복원 후 강원감영은 문화축제의 중심 공간이 되었다. 코로나가 잦아들지 않았던 올해에도 원주문화재 야행 행사가 진행되었다. '천년 원주에서 밤드리 노닐다'를 슬로건으로 점등 퍼포먼스, 관찰사 도임행사, 천년 원주 윷놀이, 원주인물 열전, 국악과 양악의 경계를 넘나들고 고전과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음악 퍼포먼스, 후원 연못에서의 소원 등 띄우기가 진행되었다.  

축제가 끝난 후 강원감영은 여전히 볼만하다. 축제 때처럼 많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강원감영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 손잡고 들어와 이곳저곳 둘러보는 젊은 부부, 감영 마당에 금 그어놓고 비석치기 하는 초등학생들, 팔짱끼고 도란도란 얘기하는 연인들, 전시된 달 항아리 배경으로 사진 찍어주는 노부부…. 이 모든 풍경은 조선시대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다. 

전통 문화는 옛 그대로 보존하고 계승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숨결이 가미될 때 훨씬 가치 있고 생명력 있는 문화로 되살아날 수 있다. 관찰사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온 강원감영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기원 북원여고 역사교사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