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감영 후원. 후원은 관찰사들이 사적, 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회, 잔치 등이 이루어졌다. 관찰사 중에는 공보다 사적인 목적으로 탐학을 일삼는 이도 있었다.

조병식, 한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함경도 관찰사로 일본 상인들이 조선에서 곡식을 끌어 모아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방곡령을 내린 인물이다. 방곡령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1880년대 일본 상인들은 조선의 곡물을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가 10배 이상 이익을 남겼다. 일본 상인들은 막대한 이익이 보장된 곡물 거래에 다투어 뛰어들어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이로 인해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조병식이 관찰사로 있던 함경도 일대는 콩의 산지였다. 일본 상인들은 함경도 일대의 콩도 마구잡이로 사들여 원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송했다. 이에 조병식은 방곡령을 선포하고 1년간 원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콩을 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방곡령에 반발한 일본은 조선에 압력을 행사하여 방곡령의 철회와 조병식의 처벌을 요구했다.

일본의 압력에 굴복한 조정에서 방곡령 철회를 명했지만, 조병식은 일본 상인들이 사들인 곡물을 몰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조병식의 이러한 행위에 일본은 군함 파견이라는 초강경 대응으로 맞섰고, 결국 조병식은 함경도 관찰사에서 좌천되어 강원도 관찰사로 전임됐다.  이후 원산의 일본 상인들이 입은 손해 배상을 하라는 압력에 굴복한 조선 조정은 조병식에게 그 부담을 모두 전가시켰다.   

무기력했던 조정에 비해 방곡령을 선포한 조병식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방곡령을 철회하라는 조정의 요구를 외면하고 일본 상인들이 사들인 콩을 몰수했고, 좌천 후 60만 냥의 손해배상까지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했으니, 의를 지키려다 수난을 당하는 지사적 면모까지 느껴진다.

외세에 맞선 저항 실상은 자신 이해기반 때문
독립협회 탄압 앞장 주일공사 때 공금도 횡령

▲ 방곡령으로 한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조병식. (사진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조병식은 부임했던 곳마다 탐학을 일삼다 처벌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1870년대 충청도 관찰사 시절 탐학을 일삼던 행적이 드러나 유배를 당했고, 형조 참판 시절에는 죄인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려 함부로 죽인다는 죄목으로 다시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1890년대 충청도 일대에서 거세게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은 충청도 관찰사 조병식의 탐학도 한몫했다. 정부의 동학 금지령을 내세워 동학교도를 심하게 탄압했고 이를 빙자하여 탐학을 일삼았다. 그 중심에 관찰사 조병식이 있었다. 동학교도들의 교조신원운동이 일어난 뒤에도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탄압이 심해질수록 저항의 불길도 확대되었다.

19세기 전형적인 탐관오리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조병식이었다. 하지만 함경도 관찰사 시절 방곡령으로 외세에 맞선 의로운 관리처럼 보였다. 이 대목에서 문득 궁금해진다. 탐학을 일삼던 조병식이 함경도에서 일본 상인의 콩 수매 활동을 금지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일본 상인의 무자비한 콩 수매는 탐관오리 조병식의 수탈 영역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외세에 맞선 저항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기반을 지키기 위한 목적의 방곡령이었다.

방곡령으로 조정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조병식은 하필이면 강원도 관찰사로 좌천됐다. 강원도는 좌천과 은둔의 땅이었다. 강원도 관찰사 시절 조병식의 행적은 전해지는 게 없다. 이후 법무대신이 되어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섰고, 주일공사 시절 공금을 횡령하여 탐관의 오명에 걸맞는 삶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