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항쟁 당시 지하상가 사거리에서 열린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는 6월 19일과 20일, 22일 등 3차에 걸쳐 추진되었다. (사진 제공: 유창목 전 치악저널 발행인)

2020년 6월 27일 원주시보건소 앞에 6월 항쟁 표지석 제막식이 있었다. 우연히 제막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카메라 챙겨들고 제막식에 참여할 때만해도 원주에서 6월 항쟁이 얼마나 큰 규모로 전개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식전 행사가 끝나고 표지석을 가린 막을 걷어내는 장면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으며 학교 아이들과 답사할 수 있는 새로운 곳이 생겼다는 생각이 앞섰다. 학교에서 역사 동아리를 만들어 지역 역사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답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막식이 끝나고 집에 와서야 행사장에서 받은 리플릿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6월 항쟁 당시 원주에서 전개된 집회와 시위 장면을 담은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러 장의 사진 중 가장 인상적인 사진이 지하상가 사거리에서 열린 '시민 대토론회' 사진이었다. 사거리를 꽉 채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가운데로 집중하고 있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 6월항쟁 표지석 제막식 포스터.

그러면서 문득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분수대 광장을 빼곡하게 채웠던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황과 조건은 달랐지만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의 뜨거운 열망이 광장 민주주의 형태로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란 점에서 꼭 닮았다.

6월 항쟁 당시 시민 대토론회는 지하상가 사거리에서 열렸다. 고문 살인 은폐를 규탄하고 4·13 호헌조치 철폐, 독재 타도, 대통령 직선제 실시에 대한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토론에 나선 대학생 중에는 광주 학살을 묵인 은폐한 미국의 책임을 물어야한다며 반미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치기도 했다.

원주 6월 항쟁에 참여했던 한 분은 그 당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던 반미 구호가 적절치 못했다고 하셨다.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과 4.13 호헌조치로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이 분출하던 상황에서 등장한 반미 구호는 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시위 인원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고 말씀하셨다.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 개최
독재에 맞선 원주시민들 민주주의 열망 분출

▲ 6월 항쟁 당시 시민 대토론회가 열렸던 원주시보건소 앞에 2020년 6월 27일 6월항쟁 표지석을 세웠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 내내 시위에 참여했던 또 다른 분은 시민 대토론회 과정에서 반미 운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던 대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이후 반미 구호가 확산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시위가 반감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6월 항쟁 당시 원주 시위는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기까지 꾸준히 이어졌다고 말씀하셨다.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는 6월 19일, 20일, 22일 3차에 걸쳐 추진되었다. 시민 대토론회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억울하게 희생된 대학생들을 애도하는 이야기, 부당한 호헌 조치를 철폐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자는 이야기, 군부 독재 타도하고 민주 정부 수립하자는 이야기, 내정 간섭하고 독재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을 반대한다는 이야기….

말문이 열리면서 민주주의가 출발한다. 억눌리고 억압되었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지하상가 사거리에서 열린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가 원주지역 6월 항쟁의 꽃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