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시청 공무원 엄대호 씨(왼쪽 2번째)가 지난 22일 강원인권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원주시지부에서 함께했다.

원주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지난 22일 강원인권사무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 대상은 본인이 몸담고 있는 원주시청이었다. 소속 직장을 상대로 진정서를 낸다는 건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를 감수하고 진정서를 낸 까닭은 무엇일까?

진정서를 낸 이는 엄대호 씨(31)다. 그는 선천성 중증 청각장애인이다.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 상대의 입 모양을 보고 의미를 알아챈다. 어눌하긴 하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지난 2014년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원주시청 공무원에 합격해 2015년 임용됐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의무적으로 소속 공무원 총정원의 3.4% 이상은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이 법에 의거해 당당히 공무원증을 목에 걸었지만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초임 발령지의 부서장은 그에게 “너에게 맡길 일은 없으니 그만두고 공장에 취직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서장이 내뱉듯 던진 이 말은 엄 씨에게 비수가 돼 꽂혔다. 맡겨진 업무도 책에 스티커를 붙이는 단순 작업이었다. 엄 씨는 “9급 말단 직원이 단순 잡무를 맡는 건 당연하지만 10년, 20년 후에도 이 같은 잡무를 담당하게 될 것만 같았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제대로 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그의 요청에 동료 직원들도 전화 업무를 할 수 없으니 한계가 있다며 의지를 꺾었다. 엄 씨에 대한 인권 침해는 이뿐이 아니었다. 다른 부서장은 사무실 탁자에 있던 지도에 자를 대면서 “여기에 줄 그을 수 있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엄 씨에겐 마치 본인이 지능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

단순 업무를 맡다 보니 근무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본인보다 1년 늦게 임용된 후배공무원보다 8급 승진이 늦었다. 그래서 임용 이후 원주시에 줄기차게 요구한 게 근로지원인이었다. 고용노동부장관은 중증장애인이 안정적·지속적으로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중증장애인의 직업 생활을 지원하는 근로지원인을 보낼 수 있도록 관련법에 명시돼 있다.

엄 씨는 본인을 대신해 민원을 청취하고, 전화를 받아줄 수 있는 근로지원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원주시는 근로지원인 대신 보조공학기기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엄 씨에게 보조공학기기는 소용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에 엄 씨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강원지사에 근로지원인 지원을 요청했으나 원주시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는 답변이 들어야 했다. 춘천시, 동해시, 삼척시 등에서는 이미 중증장애인에게 근로지원인을 지원하고 있는데, 원주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엄 씨는 1%의 가능성을 믿고 인공고막수술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공고막수술로 인한 약 1년 6개월의 질병 휴직을 마치고 원주시청으로 복귀가 결정된 지난 22일 엄 씨가 찾은 곳이 강원인권사무소였다. 원주시를 상대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다.

복귀가 결정된 부서는 행정복지센터였고, 그에게 맡겨진 업무는 행정복지센터 2층에 있는 작은도서관 관리였다. 작은도서관 관리는 일반적으로 기간제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라는 게 공무원들의 전언이고 보면 엄 씨에게 또다시 잡무를 맡긴 것이다.

진정서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연 엄 씨는 “장애가 있는데도 뽑아줬으니까 영광인 줄 알고 조용히 다녀라는 식으로 모욕감을 줬다”고 진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일하고 싶은데 일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서 “기본적인 인권 보장과 아울러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원주시는 입장문을 통해 “근로지원인 요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식 교육을 하겠다”고 했다.

이상용 기자  sylee@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