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마당극·판소리 영역 확장…창작판소리 12마당 완성

정대호(58, 풍류마을 협동조합 상임이사) 씨는 연행예술인이다.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원주지부장,  또랑광대 전국협의회 회장, 광대패 모두골 대표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탈춤, 판소리, 마당극, 풍물 굿, 대동놀이, 축제기획 등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다.

하지만 스스로는 '또랑광대'로 불리는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또랑광대는 실개천을 의미하는 '또랑(도랑)'과 땅처럼 넓고 하늘처럼 크다는 뜻의 '광대(廣大)'가 합쳐진 말이다. 바닥과 천상이 어우러진 말이기도 하다. 정 씨는 또랑광대로 살아 온 지난 40여 년을 "바닥이 하늘이라는 것을 알아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정 씨가 '또랑광대'의 길을 선택한 것은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보건행정학과에 입학한 1981년 선배들에게 탈춤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됐다.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아예 학업을 접고 본격적인 예술인의 길을 걷는다. 당시 원주에 전문예술학과가 없는 상황에서 독학으로, 때로는 주변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기능을 익히면서 기획, 연출, 연기 등을 섭렵했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 국한되거나 단순히 기능을 익히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전통예술의  창조적 계승을 위해 힘썼다. 고사반이라는 비나리를 익히면서 전통에 머물지 않고 창작비나리를 만들어 보급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탈춤을 기반으로 연행예술양식인 마당극을 창작하는 등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켰다.

시골마을의 마을굿을 재현하는 일에도 한 몫을 했다. 광대패 모두골을 이끌며 호저면 광격리, 부론면 손곡리 등 터 잡은 마을마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 대보름굿을 발굴하고 재현하는 등 공동체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해 내는 일에 앞장섰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것이 판소리다. 판소리의 불모지라 불리는 강원도에서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창작판소리만 열두 작품에 이른다.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1987년부터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접한 판소리는 전통판소리가 아닌 창작판소리였다. 김지하 시인이 사설을 쓰고 임진택 선생이 작창하여 만든 '똥바다'였다. 작품을 접한 뒤 모창을 해서 이듬해 1월 원주가톨릭센터에서 공연을 올렸다. 옥탑방같은 창고에서 소리연습을 하며 두 번째 무대에 올린 작품도 영화 서편제의 주역 김명곤 씨의 '금수궁가'이다. 정 씨는 이 두 작품을 계기로 소리꾼 선배들로부터 '해적 판소리꾼'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스승 없이 순전히 카세트 테이프로만 듣고 모창을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또랑광대로 살아 온 지난 40여 년은
바닥이 하늘이라는 것을 알아나가는 과정"

1989년부터 노동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면서 1992년 대선 때는 당시 백기완 후보의 원주선거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외도한 일도 있지만 그 것도 잠시 4년 만에 다시 광대의 길로 들어선다. 본격적인 소리훈련에 들어간 것도 그 무렵이다. 이후 판소리수업을 받으러 서울을 오르내리며 이론과 실기를 익히고 소리공력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4년에 걸쳐 춘향가 한바탕을 떼고난 뒤에는 전통판소리의 성음과 목재치 선율을 살리면서 창작판소리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몇 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만들어 발표한 창작판소리가 32년 동안 12개 작품에 이를 정도다. 12개 작품을 어느 때고 필요하면 바로 불러댈 수 있는 소리꾼은 도내는 물론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최근에는 부론면 손곡리 이달의꿈에서 자신의 열두 번째 작품을 무대에 올려 주목을 받았다. 시베리아 한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창작 판소리다. 고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대부로 통하는 인물이다.

동포들의 살림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일자리를 마련하고 학교도 세웠다. 일본군이 연해주를 침범했을 때는 의병을 조직해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러시아 한인들 사이에 '시베리아의 별' '시베리아의 페치카(난로)'로 불리며, 선생의 초상화를 자신의 집 안방에 걸어 둘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 정 씨가 공연을 올린 10월 26일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로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2005년 연해주 방문 당시 최재형 선생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는 정 씨는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임시정부 재무총장까지 지낸 선생의 삶을 보면서 언젠가 꼭 작품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며 "마침 올해가 선생이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 올해가 가기 전에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념하고 공유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요즘 잘 마시던 술도 잠시 끊고 소리공력을 높이기 위해 매일 수 시간씩 소리와 작품소화에 매진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창작판소리 12마당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에 주력할 생각"이라며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코로나19로 불안한 사회에 위안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