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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길 서양화가

200일간 반계리 은행나무 만난 화가 서연남 시민기자l승인2020.10.12l수정2020.10.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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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버스 속 반계리 은행나무 웅장함은 작품 앞에 서 있다기보다는 그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1000호(582×259) 크기 캔버스에 그려진 반계리 은행나무(이하 은행나무)는 800년의 역사만큼이나 깊은 이야기를 건넸다.

 부론면 정산리에 사는 최선길 서양화가가 그린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167호다. 높이 34.5m, 둘레 16.9m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무다. 1000호 작품은 최 작가가 은행나무를 60호 캔버스에 그린 뒤 화실에서 확대해서 그렸다. 200일 동안 은행나무를 만난 느낌이 작품에 녹아있다.

 나무를 이렇게 오랜 시간 지켜보며 현장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는 전국에서 유일할지도 모른다. 그가 은행나무를 찾한간 것은 우연이었다. 지난해 11월 SNS에 단풍이 든 은행나무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찍은 사진 한 장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이후 그는 매일 아침이면 캔버스를 챙겨 은행나무를 찾아갔다.

  "나무님, 안녕하세요". 그가 매일 아침 은행나무에게 인사를 했다. 은행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손끝으로 느끼며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나를 그린다고 느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은행나무 앞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해의 위치, 바람의 방향 등 자연의 변화에 따라 은행나무는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도시락을 가지고 나가는 날은 반나절을 훌쩍 넘겨 은행나무와 대화를 나눴다. 비가 오거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은행나무를 그리다보니 목탄 드로잉만 50여 점이 넘는다. 겨울을 지나 싹을 틔운 봄, 짙은 녹색으로 변한 여름을 지냈고, 이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최 작가의 캔버스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매일 그곳에 있다 보니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났다. 한두 명씩 은행나무를 찾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머무르는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와! 하고 감탄한 뒤 사진 한 두 장 찍고 뒤돌아갔다. 적어도 30분은 머무르며 나무를 온전히 느끼길 바랐는데 사람들은 인증샷 한 장을 위해 찾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올여름 태풍 바비가 지나간 뒤 찾아가니 나뭇가지가 부러져있었다. 나뭇가지지만 웬만한 가로수 크기였다. 부랴부랴 행정기관에 전화로 알리고 수습했다. 그 모습도 그림으로 남겨 놓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최 작가는 나무를 30년간 그린 작가다. 나무 전문가 못지않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가 원주를 찾은 것도 나무 때문이었다.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싶었다. 우연히 지도를 보다가 아내가 부론이라는 지명이 너무 예쁘다며 가 보자고 제안해 이사까지 하게 됐다.

 5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데 살면 살수록 배우고 깨달을 게 많은 곳이라고 한다. 자신보다 자신의 그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운인데 서울에서 시골로 거주지를 옮기면서까지 자신의 작품 활동을 응원해 주는 아내가 최 작가에게는 가장 고마운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운명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대회를 나가면 항상 1등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그림 그리는 아들을 못마땅해하셨다. 어릴 적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하고 상장이나 상패를 받아오면 밟거나 부술 정도였다.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도 축하한다는 한마디를 못 들었다. 법대에 진학해 판사가 되는 것을 원했던 아버지였지만 최 작가에게는 삶이 곧 그림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최 작가는 올가을에도 은행나무를 만날 것이다. 은행나무 4계절을 1000호로 그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은행나무를 그리며 나무를 그린 나무 그림들의 결정체를 보는 것 같다는 최 작가. "원주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은행나무의 삶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게 됐다.

 시민들도 만날 기회가 곧 마련될 것"이라면서 "오로지 나무와 맞닥뜨린 인상을 그 현장에서 기록한 그림들이다. 흄의 말처럼 나무의 인상을 통해 내 근원적 정신의 내용을 담아내는 경험을 해 보고 싶었다"고 했신.

 오는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는 '천년의 노래' 전시회에서 반계리 은행나무가 관람객을 맞는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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