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우리 원주가 바짝 긴장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척이나 길었던 장마를 보내고 나니 사라질 것 같던 '코로나 19'가 다시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만나던 사람도, 즐거운 여행도 모두 포기할 수 있지만, 일상을 움직이던 내 안의 삶의 에너지를 억제하고 조절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19'로 잃은 것이 많지만 가만히 우리의 일상을 톺아보면 소소하게 얻은 것도 있다. 멀리 있는 것들보다는 내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게 된 것 아닐까 싶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형편이 다 같질 않으니 딱히 내가 그렇다고 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질병이 가져다준 의도치 않은 일상의 변화에 대비하는 지혜를 갖추는 일은 누구에게나 마땅한 일이 돼가고 있다.

 더위 속 긴 장마가 끝나고 계절은 어느새 여름 끝. 이제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 속에 산과 들판에는 열매가 풍성하게 익어 갈 가을의 시작, 곧 9월이다. 집에만 있다 보니 자연스레 책장으로 눈길이 자주 가고, 그러다 불쑥 마음에 들어오는 책을 꺼내 읽게 된 것도 요즘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내 일상의 변화 중 하나다.

 우리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늘 들어 알고 있지만, 그 계절에 충실했는지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그만큼 일상 속에 책을 읽는데 배려한 시간이 적었다는 뜻이다. 이제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일상의 변화 속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이 기회에 그 조절하기 어려웠던 에너지를 책을 읽는 시간에 투자하면 어떨까! 그래서 습관까지 된다면 말이다.

 "앞으로 세상은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계층 사회가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독서의 힘" 후지하라 가즈히로가 지은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이란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내용이다. 막연하게 다가오는 메시지기는 해도 왠지 자극적인 말이다.

 조선의 독서광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 남긴 글에 자신이 평생에 읽은 책을 소개하면서 몇 번 읽었는지를 기록해 놓은 36편의 책이 있는데, 많게는 11만3천 번에서 1만4천 번까지 읽었다고 해 놓고 「사기」, 「중용」, 「대학」은 만 번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둔해 책 내용을 꿰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길을 가다 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와 멈춰서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자 말을 몰던 하인이 그 내용을 얘기해 그 뜻을 알았다고 한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 내용을 꿰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일화이긴 해도 책을 가까이하고 열심히 있는 습관은 배울 점이 있는 분인 것은 맞다. 나도 책을 가까이하는 편이긴 해도 지금껏 읽은 책의 내용을 꿰지 못함을 후회한다. 『근사록(近思錄)』에 "書不必多看(서불필다간)이오. 要知其約(요지기약)이라!"는 글이 있다. "책을 반드시 많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의 핵심을 묶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다. 책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의 핵심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습관도 중요하다.

 우리는 언제든 책을 통해 미래나 상상의 세계 어디든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뇌와 나의 뇌가 만나 연결되는 일이다. 원천석, 임윤지당, 김금원과 박죽서도 필요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박경리도 만나고 때로는 강원감영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고, 1680년 어느 날의 정시한도 만날 수 있다. 그때의 그들과 지금의 내가 만나는 것, 그래서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는 속에서 확장되는 나의 인식과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곳, 바로 책이다.

 이렇게 독서가 내 인생에 도움도 되지만 정답이 없는 시대를 열어가는 이정표도 되는 바로 그 책을 '코로나 19'로 주어진 변화된 일상 속 여유 시간에 만나보자. "에이! 나중에 하지 뭐, 지천에 책인데" 그러나 그때까지 지금의 밝은 눈이 기다려줄는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일상의 불가피한 변화를 어떻게 대비하고 활용할지는 각자의 몫이기에 뭐라 할 순 없겠다. 다만 책을 읽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시대의 이정표! 원주시민들 모두가 가졌으면 한다. 원주시립중앙도서관 회원 가운데 2019년 평균 도서대출 권수가 1.6권, 가장 많이 대출한 회원은 857권이라 한다. 아침저녁 서늘해진다. 일상의 시간 옆에 책이 함께하는 이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이동진 전 원주역사박물관장  wonjutoday@hanmail.net